밀리터리2014. 3. 18. 16:50

조선왕조 7대왕인 세조는 왕위를 찬탈하고 수많은 대신들을 죽인 피의 군주라는 악명과 더불어 세종대왕의 대업을 계승했다는 치적군주라는 칭송을 듣고 있는 극단의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세종대왕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으며 맏아들 문종에 비해 강인하고 정치에 대한 야욕을 가지고 있어 아버지 세종에 의해 진양대군에서 수양대군으로 호칭을 바꾸게 되는데 이는 수양산에서 절개를 지키다 굶어 죽은 백이,숙제를 닮으라는 의미였다는 설이 있습니다..

 

39살에 승하한 문종이 아들인 단종을 수양으로부터 지켜달라는 의미로 세종대왕때부터 왕을 모셔온 원로 김종서, 황보인에게 안위를 부탁하게 됩니다. 김종서는 무과출신의 집안에서 자랐으나 16세에 문과에 급제한 신동으로 세종대왕때 6진을 개척한 인물입니다..

 

세종대왕으로서는 조선을 창립했던 태조 이성계가 회군한 위화도부근의 6진인 종성, 온성, 회령,경원, 경흥, 부령을 지켜매며 초기왕조에게 큰 공을 세운 인물로 인식되었기 때문에 국가의 중책을 맡겼습니다..

 

 

죽음을 예견했던 문종이 종친을 두고 신하들에게 단종의 안위를 맡기게 되는데 훗날 갈등의 이유가 됩니다..

단종이 왕위에 오르면서 중신들에 의해 황표정치가 이루어지는데 왕에게 올려진 상소에 노란표식이 있는 인물을 선발했습니다..

 

황표정치를 못마땅하게 생각하여 힘을 모으고 있던 대군들중에서 가장 두드러진 인물은 안평대군과 수양대군이었으며 시간이 지나면서 중신들과 대립하기 시작합니다..

 

수양대군도 김종서를 의식해서 쉽사리 움직이지 못했으나 권람의 추천으로 알게된 한명회를 만나면서 급물살을 타게 됩니다.

한명회를 대면하는 자리에서 중국 한나라 유방의 책사 장량에 비유를 하며 크게 기뻐했다고 합니다..

 

단종이 왕위에 오른지 불과 1년만에 수양대군은 김종서를 기습공격하여 철퇴로 척살하고 안평대군과 황보인이 반정을 일으켰다고 단종에게 보고하고 나머지 신하들을 궁으로 불러들어 척살하고 문인들의 추앙을 받던 안평대군은 강화도로 귀양을 보내진후 후에 죽임을 당합니다..

 

불과 하루만에 권력을 장악하게 되는데 이 모든 시나리오는 책사인 한명회의 머리에서 나오게 됩니다..

계유정난의 주모자인 김종서파는 역적으로 몰려 3족을 멸하고 집안은 풍비박산이 나서 노예로 팔려가거나 대가집에 주어지게 됩니다..

 

 

영의정부사의 자리에 앉은 수양대군은 겸판이병조사와 내뇌병마도통사도 겸하면서 인사권과 군통수권을 장악하게 됩니다.

단종 즉위 3년만에 왕위게 수양대군에데 양위되고 왕의 자리에 오르지만 집현전 관료들과 단종의 처가식구를 중심으로 단종복위를 계획하게 됩니다..

 

중심에는 성삼문과 박팽년이 있었는데 성삼문은 왕권 양위식때 대성통곡을 한 인물로 세조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습니다.단종 복위를 치루기도 전에 한명회에게 발각되어 박팽년, 하위지, 이개, 유응부, 유성원, 김문기, 성삼문은 세조에게 끝까지 나으리라 부르며 저항하다가 참형을 당했습니다..

 

이를 사육신의 난이라고 하는데 사육신의 난을 알리것은 생육신으로 은둔하면서 세조에게 항거했던 여섯 선비로 남효온, 김시습, 원호, 이맹전, 조려, 서담수 인데 이들은 단종을 위해 벼슬에 오르지 않고 의리를 지키다 생을 달리했습니다..

 

사육신의 난에 중심에 있던 단종은 상왕에서 노산군으로 강등되어 지내다가 세조의 동생인 금성대군이 단종 복위를 시도하다 다시 발각이 되면서 금성대군과 단종에게 역모의 죄를 물어 사약이 내려지고 단종은 생을 마감합니다..

 

왕위에 오른지 13년만에 자신의 아들인 예종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얼마뒤 승하하게 되는데 나라을 세운 왕이 가지는 묘호인 조를 쓰게 된것은 후대왕인 예종의 고집에 의해서였으며 이는 후에 인조, 선조에도 붙여지게 되는 나쁜예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세조는 승하했지만 신숙주와 더불어 한명회는 세도가를 형성하고 있었는데 이를 가르켜 훈구세력이라 불렀습니다..

첫째딸이 예종의 비로 둘째딸이 성종의 비로 간택이 되면서 20년사이에 4번의 공신에 기록이 됩니다..

 

자신의 호이기도한 정자를 한강변에 짓고 압구정이라 명하게 되는데 명나라 사신을 사사로이 접대하면서 탄핵되어 남은 여생을 압구정에서 지내고 다음 왕 연산군 갑자사화에 연류되어 묘가 파헤쳐져 목을 자르는 부관참시를 당하게 됩니다..

 

계유정난의 중심인물인 수양대군과 김종서, 한명회는 격변하는 조선왕조의 흐름에서 큰 사건의 중심에 있었고 사후에도 논란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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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원초적한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