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터리2016. 3. 23. 18:32




현대에는 각국의 군대마다 특수전을 수행하는 특수부대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가장 많은 특수부대를 가진 것은 역시나 군사강국 미국이고 영국의 SAS, 이스라엘의 사이렛 매트칼, 프랑스 외인부대와 지젠느, 독일 GSG9, 우리나라의 공수특전사를 꼽을 수 있습니다.





현재의 특수부대는 하늘과 바다, 육지를 넘나들며 특수전을 수행하고 있으며 테러임무와 시가전, 요인암살등 분야가 넓어지고 세분화되고 있습니다. 특수부대라고 불릴만한 부대를 가장 먼저 창설한 것은 2차 대전의 독일이었습니다. 공수부대로 불리우는 이들의 이름은...



팔슈름야거(Fallschirmjager)



팔슈름예거로 불리우기도 하는 부대로 우리나라의 번역으로는 공수부대가 가장 적합한 것 같습니다. 베르샤유조약을 파기하면서 독일 공군인 루프트바페를 창설하게 됩니다. 루프트파레를 양성한 것은 독일의 항공사 루프트한자였습니다. (2차 대전 동안 100대 이상 격추한 에이스의 대부분이 독일 공군소속이었다는 것만 보아도 독일 공군의 위력을 알 수 있습니다.)









공군총사령관이 헤르만 괴링은 공수부대의 운영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공군 원수인 쿠프트 슈투덴트(Kurt Student)에게 공수부대의 창설과 운영을 일임합니다. 2차 대전 당시 군대는 주력이 육군이었고 공군은 육군의 항공대 정도의 규모였고 해군이 강한 나라는 영국이었습니다.



(팔슈름야거는 보병이 착용하는 슈탈헬름의 변형된 전용 헬멧을 쓰고 있어 보병과 확실히 구분을 할 수 있었습니다.)





쿠르트 슈트덴트



유럽대륙은 나라가 가깝게 붙어있다는 특성이 있었기 때문에 아돌프 히틀러는 육군에 주력을 합니다. 공군총사령관 헤르만 괴링과 해군총사령관 칼 되니츠에게는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하지만 말로만 할 뿐 지원을 하지 않습니다. 히틀러는 오로지 육군...



그럼에도 팔슈름야거에 대한 필요성에는 공감을 하고 있었습니다. 독일은 전격전이라는 전술을 통해 기선을 제압하는 전술을 주로 사용했는데 가장 중심이었던 기갑부대의 탱크의 이동경로인 교각을 파괴하기 일쑤여서 진격 속도가 늦춰지는 일이 자주 발생하게 됩니다. 팔슈름야거를 후방에 투입해 먼저 교각을 점령하면 이런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을 히틀러도 알고 있었습니다.









공수부대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지만 지원은 하지 않는 이중적인 태도를 취했으며 2차 대전내내 히틀러는 립서비스로 장성들을 농락하면서 신뢰를 잃게 됩니다.



팔슈름야거의 첫 임무인 에반에말 요새 전투에서 혁혁한 공을 세우며 괴링은 히틀러에게 두터운 신임을 얻게 됩니다.



폴란드에 이어 육군력이 강력했던 프랑스를 침공하고 싶었던 히틀러는 에리히 폰 만슈타인의 낫질작전을 승인합니다. 프랑스 외곽에서부터 낫질을 하듯이 전개되는 작전에 매료되었고 선봉에는 만슈타인이 위치를 했으나 마음에 걸리는 것은 유럽 3대 요새인 에반에말이었습니다.









낫질작전을 위해서는 네덜란드와 벨기에를 침공해야 하는데 벨기에는 난공불락의 요새 에반에말이 있었습니다. 강을 끼고 있으며 1m의 두터운 콘크리트로 방어벽을 구축한 에반에말을 점령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으나 육로만을 지키고 있는 벨기에군의 허를 찌르는 공수부대의 투입을 결정합니다.


(에반에말을 건설할 때 독일이 참가를 했었기 때문에 요새의 구조를 알고 있었다는 것이 함정...)









글라이더를 타고 하늘에서 강하한 팔슈름야거는 예상보다 쉽게 에반에말을 장악하고 낫질작전을 전격전으로 밀어붙여 프랑스를 점령하게 되어 공수부대의 첫 임무는 대성공을 하게 됩니다.




다시 한 번 공수부대가 이름을 떨치게 된 크레타섬 전투..





데이비드 스털링




크레타섬을 점령하고 있던 영국이 독일 공수부대의 활약으로 점령지를 빼앗기자 영국의 총리 처칠은 영국군내에 공수부대의 창설을 고려하게 되고 데이비드 스털링에게 일임을 하게 됩니다. 코만도부대의 인원을 착출해 공수부대를 창설하게 되는데 이 부대가 영국의 특수부대인 SAS(Special Air Service)입니다.









초기 SAS는 독일 공수부대와는 달리 게릴라전을 바탕으로 한 특수전에 적합한 부대였습니다. 유럽보다는 아프리카에서 주로 활동했고 이후에 공수임무가 확장되면서 서부전선에 참가하기도 했습니다. 바야흐로 공수부대, 특수부대의 시대가 열리게 된 것입니다.


영국은 착출한 공수부대를 훈련하려고 했지만 인프라가 여락했습니다. 전투기와 전폭기가 대부분이었고 수송을 할 수 있는 수송기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반면, 독일은 괴링의 주도하에 융커스 수송기를 운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공수부대를 운영하기 쉬웠습니다.



전쟁 중기를 넘어서면서 팔슈름야거는 방어전에 투입되는 비율이 늘어나게 됩니다. 공수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특수훈련을 받은 공수부대원의 전투력은 상당한 우위에 있었습니다.



이탈리아 몬테카시노 전투에서 연합군에 맞서 방어전을 펼치는데 소수의 인원으로 영국, 미국, 프랑스, 폴란드, 호주의 정규군과 이탈리아의 빨치산을 막아내며 '녹색 악마'라는 별병이 생기게 됩니다. (아마도 팔슈름야거 전투복이 얼룩무늬의 초록색이 들어갔었기 때문이라고 추측.)



그럼에도 공수부대에 대한 히틀러의 생각은 변하지 않았는데 공수임무에 투입된 대규모 인원이 제대로 작전을 수행하지 못하는 경우도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초기 공수부대는 공수강하를 하고 집결지에 모여 작전을 수행하는 전술을 운용했는데 강하시 권총, 수류탄, 대검등 간단한 장비만을 가지고 강하를 했고 돌격소총과 중화기는 컨테이너로 낙하를 했습니다. 낙하지점에 제대로 착지를 하지 못하는 경우도 빈번했지만 무기를 찾지 못해 집결지에 모이기 전에 적에게 노출되는 일이 빈번했습니다.



공군총사령관 헤르만 괴링은 공수부대에 적합한 개인화기를 제안했고 FG42가 탄생하게 됩니다.









FG42는 자동발사도 가능하게 고안되어 연사가 가능했지만 탄창을 옆으로 삽입하는 방식이어서 균형이 맞지 않았고 반동도 심해 운용이 어려웠습니다. 전쟁 말기인 43년에 보급되기 시작했기 때문에 운용이 많은 화기는 아니었습니다. '히틀러의 전기톱'이라고 불리우는 SG42에 비하면 실전에 투입된 경우가 많지 않습니다.



수세에 몰린 독일은 발터 모델이 지휘를 한 방어전에 주력하게 되는데 팔슈름야거는 공수임부보다 방어전에 투입되는 경우가 더 많았습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 이후 벌어진 카랑탕 방어전(미드 밴드 오브 브라더스의 배경)에도 참가를 하게 됩니다. 마지막까지 전장을 누비며 활약을 했지만 독일은 패전을 하게 되고 팔슈름야거의 명성은 역사속으로 묻히게 됩니다.



독일 제7 항공사단에 속했던 팔슈름야거는 특수부대의 중요성을 알린 최초의 특수전부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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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원초적한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