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맘대로2015. 12. 17. 10:00



어네스트 후스트, 피터 아츠, 레이 세포, 마크 헌트, 레미 본야스키, 제롬 르 밴너는 K-1의 중흥을 이끈 선수들입니다. 당시 입식타격 방식의 스포츠로 일본과 더불어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인기를 얻었는 데 제롬 르 밴너는 그 중에서도 가장 인기가 높았습니다. 최고의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어네스트 후스트보다도 제롬 르 밴너의 경기가 더 재미있었습니다.





K-1 초기 최고의 선수였던 앤디 훅이 암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가장 친했던 피터 아츠가 최고의 선수로 불렸고 이에 도전하는 많은 선수들은 기량을 쌓으며 발전해 나갔습니다. 어네스트 후스트는 가장 노장이었지만 노련미를 바탕으로 상대를 분석해 약한 틈을 타서 승리를 하는 지능적인 플레이를 즐겼습니다.


어네스트 후스트의 경기는 지루했고 서로의 공방이 화끈하게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링을 돌며 시간을 끌기 일쑤였습니다. 반면 제롬 르 밴너의 경기는 밴너가 실신을 당하던 상대가 실신을 당하던 개의치 않고 저돌적인 플레이로 화끈하고 파이팅 넘치는 경기를 펼쳤고 그가 무관임에도 불구하고 경기를 보는 순간 매료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제롬 르 밴너는 복싱을 베이스로 무에타이와 가라데를 추가적으로 습득해 자신의 스타일을 만들었는 데 파괴력 있는 펀치와 더불어 로우킥과 미들킥을 선보이며 최고의 경기를 만들었습니다. 경기에서 실신을 당한 경우가 몇 번 있는 데 밴너는 유리턱이라서 펀치를 강하게 턱에 맞으면 실신을 하곤 했습니다.


핸디캡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상대의 눈치를 살피며 링을 돌아다니는 플레이를 하지 않고 저돌적으로 펀치를 날렸습니다. 그가 무관의 제왕이라고 불리는 것이 바로 이런 점이었 때문이었고 밴너가 타이틀을 차지하기를 바라는 팬들이 많았습니다. 토너먼트로 펼쳐지는 그랑프리에서 그는 번번히 타이틀을 따지 못했기에 팬들의 응원소리는 더 높아졌습니다.


팔꿈치 골절로 재활의 시간을 보내기도 한 밴너가 다시 링에 섰을 때 그의 흐트러짐 없는 모습에 감동을 했고 더욱 강력한 모습으로 팬들의 성원에 보답을 했지만 타이틀을 들어 올리는 데는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K-1의 뒤를 이은 글로리에서 중년의 제롬 르 밴너는 신예들에게 힘없이 부너졌고 세월의 무심함을 알려 주었습니다.


현역에서 은퇴를 했지만 그가 펼쳤던 파이팅 있는 경기는 아직도 입식타격을 좋아하는 팬들에게 회자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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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원초적한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