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터리2018.08.07 10:40


미국은 1차대전으로 많은 인명이 희생되고 많은 비용을 감당해야 했으며 유럽 전쟁에 참여하는 것에 대해 반대 여론이 높아졌다. 경제공황을 극복한 이후 경제력이 급성장한 미국은 유럽에서 벌어진 두 번째 전쟁에 참여하지 않았으며 태평양 전쟁에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일본은 전쟁을 시작하기 전 가쓰라 테프트 조약으로 동북아시아를 제외한 아시아의 패권을 미국에게 넘겼고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중일전쟁을 일으킨 이후 날로 기세가 높아가는 육군 강경파에 비해 해군은 상당히 이성적이었다.



유학시절 야마모토 이소로쿠



미국에서 유학하며 실상을 파악하고 미국과의 전면전을 치르는 것이 불리하다는 것을 알게 된 일본 함대 사령관 "야마모토 이소로쿠" 는 미국과의 전쟁을 경고했다. 이소로쿠의 조언에도 불구하고 황제파의 세력 약화로 기득이 된 통제파는 도조 히데키를 중심으로 야망을 드러냈다.





미국과 전면전에 자신하는 육군 군벌과 대립하던 이소로쿠 사령관은 이전부터 거함거포주의에서 벗어날 것을 계획했다. 함재기를 기반으로 한 항공모함전이 새로운 해군 전술이 될 것을 예감하였고 미국과의 전쟁이 결정되면서 '진주만 기습' 을 주장했다.





어차피 치뤄야 할 전쟁이라면 선제 공격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한 이소로쿠는 주력 항공모함을 이끌고 진주만으로 향했다. 아가키, 카가, 히류, 소류에 탑재된 함재기는 미리 훈련한대로 진주만을 초토로 만들었고 기습 작전은 표면적으로 성공했다.





일본 군부 전체가 미국을 상대로 한 기습 작전에 대해 환호했으나 이소로쿠는 흥분하지 않았다. 계획대로라면 진주만 기습을 진두지휘한 '나구모 주이치' 제독이 세라토가, 엔터프라이즈, 렉싱턴 항공모함을 침몰시키고 유류 저장고를 파괴해야 했다.



나구모 주이치 제독



나구모 제독의 오판을 두고 이소로쿠는 불안한 기색을 드러냈고 미국이 일본의 예상과 달리 참전하면서 예감은 적중했다. 미드웨이 해전에서 패하고 거점이었던 과달카날을 빼앗기면서 기세가 미국으로 향했고 경제력을 바탕으로 한 미국은 무서웠다.





군수 물자를 쉼 없이 생산하는 미국에 비해 석유와 철이 떨어지기 시작한 일본은 열세에 놓이기 시작했으나 미국은 "야마모토 이소로쿠" 를 두러워했다. 


언제든지 전세를 역전시킬 수 있는 역량을 가진 지휘관으로 평가했고 공세를 늦추지 않았다.





1943년 4월 18일, 무전을 통해 이소로쿠 사령관이 전선을 시찰하는 것을 파악한 미국은 미리부터 P-38 라이트닝 전투기로 모의 훈련을 거쳤다. 초계 활동 중 우연하게 이소로쿠 사령관을 발견하고 격추한 것으로 위장하기 위한 계획은 맞아떨어졌다.



이소로쿠가 전사한 것으로 추정되는 정찰기



암호 해독을 통해 일본의 정보를 모두 파악하고 있었던 미국에게 너무도 쉬운 계획이었고 일본 함대 사령관 "야마모토 이소로쿠" 는 솔로몬제도 부건빌 섬 주변에 격추되어 전사하게 된다. 이소로쿠 사령관이 전사하면서 전세는 급격하게 미국으로 기울게 된다.





일본은 함대 사령관이 전사한 것을 알리지 않았고 미국은 암호 해독으로 이소로쿠를 격추할 수 있었다는 점이 노출될 것을 우려하여 격추 사실을 숨겼다. 미국이 가장 두려워 하던 함대 사령관이 전사하면서 미 해군의 사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Posted by 원초적한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