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터리2018. 5. 24. 19:06


'역사상 가장 뛰어난 저격수', 'One Shot One Kill', '하얀 깃털(White Feather)' 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지만 가장 위대한 수식어는 저격수 잡는 저격인 "역저격의 최고봉' 이라는 타이틀입니다. 


미 해병대 소속 저격수 레전드 "카를로스 해스콕(Carlos Norman Hathcock Ⅱ)" 를 지칭하는 수사입니다.





카를로스 헤스콕의 공식적인 저격 기록은 93명이지만 비공식적으로는 300명이 넘는 저격 성공을 거두었다고 예상됩니다. 해스콕이 사용하던 M21 SWS(Sniper Weapon System) 은 새로운 돌격소총 M16이 베트남전에 채택되면서 M14 전투소총을 개량한 총기입니다.


대부분의 저격 소총이 볼트액션 방식을 가지고 있지만, M21은 반자동 방식입니다. 7.62×51mm 탄을 사용하는 M21은 돌격소총에 비해 상대적으로 대인저지력이 높았고 유효 사거리가 길었습니다. 





카를로스 해스콕이 사용하던 M21 저격총을 개량한 M25 SWS는 Springfield Armory M25 White Feather 로 명명되었고 USSOCOM(U. S Special Operations Command, 미 특수전사령부) 산하 육군 특수부대와 해군 특수부대에서 사용되었습니다.


아칸소 주 리틀콕에서 태어난 카를로스 해스콕은 어릴적부터 사냥에 소질이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2차대전에서 사용하던 마우저로 사냥을 하는 것을 보았고 22구경 JC 히긴스 단발 소총으로 사냥을 시작했습니다.





해병대에 입대하는 꿈을 17세에 이루었고 캠프 페리에 배치되어 사격대회에 출전해 윔블던 컵을 수상합니다. 재능을 보인 해스콕은 베트남전이 발발하면서 헌병으로 파병되었으나 윔블던 컵에서 우승한 소식이 전해지면서 저격수를 키우려고 준비하던 소대장에 의해 보직을 변경합니다.





어릴적부터 재능을 가진 해스콕은 베트남전에서 북베트남군과 베트콩을 저격하면서 명성을 높였습니다. 저격을 위해 1.5km를 4일 동안 기어가기도 했으며 M2 중기관총으로 최장거리 저격을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해병대가 착용하던 부니햇에 하얀 깃털을 꼽고 다니면서 공포심을 불러일으켰고 동료들이 부니햇에 하얀 깃털을 꼽고 다니는 것을 따라하면서 공포심은 극에 달했습니다. 신출귀몰하는 해스콕에 당황한 베트콩은 두려움에 떨었고 해스콕의 명성은 날로 높아졌습니다.





해스콕과 관측병인 '존 버크(John Roland Burke)' 는 다낭 남서쪽에 주둔한 힐55 화력지원 기지에 파견되었습니다. '코브라' 로 알려진 저격수는 이미 여러 명의 미 해병대원을 저격하였고 해스콕은 코브라를 제거하라는 명령을 하달받았습니다.


코브라는 해스콕을 저격하기 위한 저격수였고 해스콕과 조우를 한 뒤 서로가 스코프를 통해 위치를 확인했습니다. 간발의 차이로 해스콕이 그녀를 저격했고 힐 55에 주둔했던 병사들은 공포에서 벗어났습니다.



 


해스콕은 소대장과 심문관이며 "아파치" 로 불린 여성 베트콩 저격수를 저격하는 임무에 자원했습니다. 그녀는 해병대와 남베트남군을 잔인하게 고문하고 살해하는 것으로 유명했습니다. 해병대의 살갗을 벗기고 눈꺼품을 잘라내는 것에 주저함이 없었습니다.





해스콕은 아파치를 저격하기 위해 수 주를 기다렸고 임무에 성공했다는 소식을 전했습니다. 당시 미군 저격수 현상금이 최고 2,000 달러였을 때 해스콕의 목에 걸린 현상금은 30,000달러를 훌쩍 넘어섰습니다.





베트콩 저격수를 저격하면서 역저격에 재능을 보인 해스콕은 이후로 저격수 잡는 저격수로 활약하였고 저격 인원 93명 중의 반을 저격수로 채웠습니다. 저격 능력으로 해스콕을 따라올 수 있는 병사는 없었으며 베트콩 저격수로부터 미군은 자유로울 수 있었습니다.


1969년 9월 16일 중부 베트남 쾅남 주에 위치한 힐 66 LZ Baldy(착륙기지) 근처 루트 1에서 탑승하고 있던 수륙양용장갑차 LVT-5 가 대전차포 공격을 받았습니다. 탑승했던 7명의 동료가 화염에 휩싸이자 해스콕이 이들을 구하기 위해 노력했고 얼굴과 팔, 다리에 3도 화상을 입게 됩니다.





누군가에 의해 강에 던저진 해스콕은 재활을 거쳐 다시 활동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의 커리어는 막을 내리게 됩니다. 회복기간 동안 해스콕은 '퍼플 하트' 훈장을 수여받았습니다. 재활 이후 해병대 기지가 있는 콴티코에서 저격수 학교를 설립하는 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카를로스 해스콕은 퍼플 하트 훈장 이외에도 해군과 국방부에서 다수의 훈장을 수여받았습니다.


은퇴 이후 어네스트 해밍웨이의 글을 인용하면서 "사냥은 살인이 아니라 사냥이었다" 는 소감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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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원초적한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