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터리2017. 6. 8. 07:00


참혹한 전쟁으로 알려진 세계 1차대전은 대규모 전쟁의 시작이었고 유럽 인구 1,000만 명을 사라지게 한 무서운 기억이기도 합니다. 일촉즉발의 유럽 정세가 세르비아계 민족주의자 가브릴로 프란치프의 두 발의 총성으로 촉발된 전쟁은 상상 이상이었습니다.


연합군과 동맹군으로 나뉘어진 전쟁은 참호전으로 전개되면서 지루한 공방전이 이어졌고 후방에서 지휘하는 지휘관들은 워 게임을 즐기는 듯 아무런 죄책감이 없었습니다. 10만의 병사가 하루만에 사라지는 보고가 올라왔지만 개의치 않는 지휘관의 모습은 혀를 내두르기에 충분했습니다.





독일은 동맹군의 중심으로 연합군과 맞서 있었으며 제해권을 장악한 영국에 대항하기 위한 방책을 고심했습니다. 해양대국으로 해군력이 강력했던 영국을 상대로 대규모 전투를 벌일 여력이 없었던 독일은 참신한 전술을 접목하며 대서양의 헤게모니를 노렸습니다.


당시로서는 상당한 비난에 놓였던 잠수함을 대규모로 건조하는 방식을 선택했던 독일의 행보는 확실히 위협적이었습니다. 섬나라인 영국으로 들어오는 전쟁 물자를 미연에 봉쇄하기로 한 "무제한 잠수한 작전" 은 상당히 현실적인 전술로 평가되었습니다.





건조된 U 보트는 기대 이상의 능력을 가지고 있었고 대서양을 통과하는 함선과 상선을 위협하는 존재가 되었으며 제해권을 일부 장악하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하게 됩니다. 대서양을 통과하는 중립국 미국의 상선만 피하면 모든 것이 순조로웠습니다.


영국과 미국을 오가는 여객선과 상선에 미국인이 탑승했는 지를 구분하기는 당시로서는 불가능했고 독일이 우려하던 상황이 벌어지게 됩니다. 미국인 128명을 태운 루시타니아 호가 대서양을 건너 미국으로 항해하는 도중 U 보트가 공격을 감행합니다.





레이더와 통신 기술이 발전하지 못했던 시절의 U 보트는 상대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기술을 갖추지 못했고 128명의 미국인이 희생되는 결과를 만들어냅니다. 중립을 선언했던 미국을 두려워했던 독일은 미국의 참전을 염려하여 "무제한 잠수함 작전" 을 보류하게 됩니다.


미국에게 즉각 사과하는 낮은 자세를 보이며 여론과 정책자들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상당히 조심스러운 행보는 미국의 참전을 바로 불러오지는 않았습니다. 정책자들이 전쟁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하는 것과 달리 대중들의 여론은 들끓기 시작했습니다.





중립국을 알렸음에도 불구하고 희생을 치른 미국민의 원성은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치머만 전보가 계기가 되어 미국이 1차대전에 참전하게 되었다고 알려져 있으나 독일 해군의 무제한 잠수함 작전부터 쌓여진 감정의 표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상당히 효과적인 해상 작전으로 평가되는 무제한 잠수함 작전을 신봉했던 독일은 전선이 불리해지면서 무차별적인 공격을 다시 감행하게 되었고 미국은 참전을 확정하게 됩니다. 미국의 참전은 전세를 확실하게 연합군 쪽으로 향하게 만들었고 지루한 참호전은 끝을 맺게 됩니다.





무제한 잠수함 작전으로 유명세를 타게 된 U 보트는 훗날 독일 해군 사령관 "칼 되니츠" 에 의해 다시 모습을 갖추게 되며 대서양에서 뛰어난 활약으로 2차대전의 핵심 전력으로 떠오르게 됩니다. 1차대전에 펼쳤던 독일 해군의 차선책은 해군 전술의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오기는 했지만 미국을 참전시키는 명분으로 작용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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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원초적한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