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터리2017. 6. 7. 07:00


13세기 벌어진 백년전쟁은 역사상 가장 긴 전쟁으로 영국 왕가 플랜태저넷 가와 프랑스 왕가 발루아 가 사이에 벌어진 왕위 계승 전쟁이었습니다. 유럽의 헤게모니를 가지고 싶었던 영국은 프랑스 일부 영토를 차지하면서 프랑스 왕의 신하를 자처했습니다.


영국 왕이었지만 프랑스의 신하였고 프랑스 왕보다 많은 영토를 차지하는 희귀한 일이 발생하게 된 것입니다. 영국은 언제라도 기회가 된다면 프랑스를 점령하고 싶어했고 계승자가 없었던 샤를 4세가 사망하면서 영국과 프랑스는 갈등에 휩싸이게 됩니다.





샤를 4세의 누이가 영국 왕 에드워드 2세의 부인이었고 왕위를 이은 에드워드 3세의 어머니였습니다. 에드워드 3세는 외삼촌인 샤를 4세의 왕위에 자신이 합당한 인물이라고 자청했으며 왕위 계승에 타당한 의견이라고 받아들여지면서 정세가 급변하게 됩니다.


영국과 프랑스는 왕위를 놓고 주변국들을 끌어들이게 되고 1337년에 시작한 전쟁은 1453년이 되어야 끝을 맺게 됩니다. 영국 왕이었던 에드워드 3세가 우세였지만 전쟁의 마지막은 프랑스의 승리로 끝나면서 영국이 꿈꾸던 프랑스 점령은 사라지게 됩니다.





16세기에 접어든 영국은 청교도 혁명이 일어나면서 왕당파와 의회파의 갈등으로 내란을 겪게 되고 의회파의 수장 올리버 크롬웰(Oliver Cromwell)은 영국의 중심에서 왕당파를 몰아내고 정권을 안정시키게 됩니다. 왕당파는 영국의 서쪽 끝자락인 실리 제도로 퇴각하게 될 정도로 몰락하였습니다.


에스파냐와 80년 전쟁을 겪은 네덜란드는 영국의 도움으로 독립을 이뤄냈고 영국 내전에서 승리할 수 있는 세력과 손을 잡기로 결정했습니다. 기득이었던 왕당파가 의회파에 의해 몰락하면서 네덜란드는 의회파의 편에 서게 되었고 왕당파와는 대립관계가 되었습니다.


실리 제도에 자리잡은 왕당파는 해역을 지나가는 네덜란드 상선을 무차별 공격하게 되었고 네덜란드는 왕당파에게 배상을 요구하게 됩니다. 몰락한 왕당파는 실리 제도에 쫒겨난 처지였고 배상할 수 있는 여력이 없었기 때문에 네덜란드의 요구를 거부하게 됩니다.





마르턴 하르페르츠존 트롬프(Maarten Harpertszoon Tromp) 제독은 배상을 거부한 이유로 전쟁을 선포하고 정식 문서를 발행하여 왕당파에게 선전포고를 하게 됩니다. 네덜란드 함대는 실리 제도를 향해 출항을 서둘렀고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네덜란드 함대가 도착하기도 전에 의회파의 함대가 실리 제도를 장악하면서 왕당파는 와해되었고 선전포고한 네덜란드는 전투를 벌이지도 못한 채 뱃머리를 돌리게 됩니다. 영국 내전은 왕당파의 항복으로 끝을 맺었고 네덜란드도 전쟁을 종료한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당시 전쟁은 선전포고문을 보내고 전쟁을 시작했으며 전쟁의 종결을 문서로 남겨야 하는 관행이 있었습니다. 전쟁의 시작은 있었지만 끝을 맺지 못한 채 335년의 시간이 흘렀고 1985년 실리 제도의 자치회장이었던 로이 던컨은 당시의 선전포고문을 발견하게 됩니다.


잊혀진 전쟁으로 남아있던 전쟁을 마무리하기 위해 영국 주재 네덜란드 대사 레인 하위데코퍼르 백작은 실리 제도로 초청이 되었고 평화협정을 맺으면서 오랜 전쟁은 종지부를 찍게 됩니다. 역사상 가장 길었던 백년전쟁보다 긴"335년 전쟁" 은 한 발의 총성도 없이 끝을 맺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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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원초적한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