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터리2017. 6. 2. 07:00


산업혁명 이후로 유럽의 각국은 넘쳐나는 물자를 소화하기 위해 많은 식민지를 노렸고 대영제국을 주축으로 해군력을 강화하기 시작했습니다. 식민지 쟁탈을 위해서는 무엇보자 해군력의 증대가 중요했고 영국은 지리적인 특성을 앞세우며 해양대국으로서 최고의 권위를 갖게 됩니다.


군사력 1위의 위엄을 달성하여 많은 식민지를 쟁탈했고 아시아에까지 진출하면서 입장을 권고히 했습니다. 통일이 늦어짐에 따라 뒤늦게 식민지 개척에 나선 독일은 우선권을 빼앗긴 뒤 제대로 확장성을 가질 수 없었고 팽배해지는 민족주의를 방관해야 했습니다.





유럽은 불안정한 정세를 유지하고 있었으며 범슬라브주의를 주창하고 있는 발칸반도가 조만간 커다란 광풍에 휩싸일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유럽의 화약고로 불리우는 발칸반도는 인접한 오스트리아 헝가지 제국과 갈등을 겪고 있었고 주변국들과의 관계도 원활하지 않았습니다.


독일 황제이며 프로이센 왕이었던 카이저 "빌헬름 프리드리히 루트비히 폰 프러이센(빌헬름 1세)" 는 자신과 뜻을 같이하는 철의 재상 "오토 폰 비스마르크" 와 함께 독일 제국을 안정시키는 데 노력하고 있었습니다. 돈독한 관계를 맺고 있던 독일 황제와 재상은 불안정한 시기를 잘 견뎌낼 수 있는 최상의 파트너였습니다.






비스마르크는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헝가지 제국과 3국 동맹을 맺으며 유럽 내 입지를 다지려고 노력하였고 재정 러시아와의 관계를 우호적으로 유지하면서 급성장을 이루게 됩니다. 빌헬름 1세와 비스마르크는 정치적인 대립을 해결하고 독일을 강력한 제국으로 만드는데 절대적인 조합이었습니다.





빌헬름 1세가 세상을 떠나면서 아들 "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콜라우스 카를 호엔촐레른 폰 프로이센 (프리드리히 3세)" 에게 왕위를 계승했지만 직위한 지 100일 하루 앞둔 시점에 후두암으로 유명을 달리하게 됩니다. 카이저에 오른 "프리드리히 빌헬름 빅터 알베르트 (빌헬름 2세)" 는 아직은 정세에 어두웠습니다.


빌헬름 2세의 어머니는 영국 빅토리아 여왕의 딸이었고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의 왕은 5촌 간이었기 때문에 유럽 정세에 신경쓸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유럽을 장악하고 있던 합스부르크 왕가는 오랜 세월 주변국들을 장악하였고 러시아와도 정략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유럽의 화약고로 불리우는 발칸반도를 방문한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 부부을 암살한 세르비아계 철없는 19살 가브릴로 프란치프의 두 발의 총성은 유럽을 포화의 중심으로 끌어들이게 됩니다. 세계 최초로 벌어진 대규모 전쟁은 사망자만 1,000만 명에 달할 정도로 참혹했습니다.





동맹국과 연합군을 모두 합해 1차대전으로 발생한 사상자가 3,800만 명에 이르는 엄청난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참호전을 치르면서 제대로 된 보급을 받지 못했으며 전우의 시체와 함께 밥을 먹고 생활하던 양측의 병사들은 정신적으로 황페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양측 군사 지휘관과 정치적인 모든 인물들을 전범으로 규정할 수 있지만 단연 최고의 자리는 빌헬름 2세의 것이었습니다. 게임의 숫자처럼 병사들을 생각했던 빌헬름 2세는 하루 사이에 10만 명이 사망하는 전장의 상황에 개의치 않았고 전쟁을 즐기는 모습까지 보였습니다.





미쳐가는 전장의 상황을 외면한 채 벌이는 서부전선의 병사들은 전투로 전사하는 숫자보다 질병으로 사망하는 경우가 급격하게 늘어갔습니다. 죄책감이 없었던 빌헬름 2세는 여전히 자신이 벌이는 게임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다가 시민 혁명을 맞이하게 됩니다.


군부를 장악한 파울 폰 힌덴부르크와 에리히 빌헬름 루덴도르프에 의해 축출되기 전까지 빌헬름 2세는 왕권신수설을 주장하며 자발적인 퇴위를 거부했고 네덜란드로 망명을 떠나게 됩니다. 1차대전이 독일의 패전으로 마무리되면서 안정되기는 했지만 전쟁의 책임을 물어 엄청난 배상금과 금수조치가 취해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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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원초적한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