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터리2017. 6. 1. 07:00


나치당 총수 아돌프 히틀러가 일으킨 세계 2차대전은 서부전선에서 벌어진 전투보다 동부전선에서 벌어진 독소전쟁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라는 평가가 지배적입니다. 서방국가들에 의해 널리 알려진 서부전선의 전투는 치열했던 독소전쟁에 비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습니다.


독재자 히틀러의 오판도 한 몫을 했지만 바르바로사 작전으로 드넓은 소련을 몇 개월만에 정복할 수 있을 것으로 믿었던 육군 장성들의 동조가 있었습니다. 냉철하고 완벽에 가까운 시스템을 갖춘 독일이 수많은 사상자를 발생시키며 패망의 길로 접어드는 중심에는 소련에 대한 섣부른 판단이 있습니다.






겨울전쟁


독일과 맺은 불가침 조약을 철썩 같이 믿었던 이오시프 스탈린은 핀란드를 침공하게 됩니다. 전쟁을 치뤄 본 경험이 전무했고 제식교육 조차 받지 못했던 핀란드군을 섬멸하는 것은 어린아이와 싸우는 것보다 쉬울 것이라고 히틀러는 판단했습니다.


대규모 병력을 앞세운 소련군은 핀란드군에게 이례적인 일격으로 주춤하더니 수많은 사상자를 발생시키는 굴욕을 겪게 됩니다. 기후와 지형을 활용한 핀란드군과 세계 최고의 저격수로 불리우는 시모 해위해의 활약으로 소련은 퇴각을 결정하게 되고 히틀러는 소련 침공에 확신을 갖게 됩니다.






높은 문맹율


볼셰비키 혁명의 적백 내전을 통해 공산화가 진행되던 소련은 역사상 가장 혼란을 겪던 시절이었고 제대로 된 정책을 펼치지도 못하고 있었습니다. 소련군의 전술이라는 것은 그저 머리 숫자로 드리미는 것이 전부였고 서방에서는 도로 포장에 쓰이는 장비 "스팀 롤러" 라는 비야냥 섞인 별명으로 부르기도 했습니다.


소련군대는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여력을 가지고 있지도 않았기 때문에 병사 대부분이 글을 읽지 못했습니다. 그저 공산당이 시키는대로만 움직이는 것이 살아가는 유일한 방편이기도 했습니다. 총기 교범을 알지 못하는 소련군이 대부분이었고 전선에서 암호도 없이 교신을 하기도 했습니다.






지휘관의 부재


러시아 내전인 적백 내전으로 승리를 거두면서 권좌에 오른 스탈린은 KGB의 전신 NKVD의 수장 "니콜라이 예조프"를 앞세워 대대적인 숙청 작업에 착수합니다. 반대파였던 왕당파의 군부가 맘에 들지 않았고 여전히 군부를 장악하고 있는 것을 심각하게 바라 본 것입니다.


1937년 숙청 작업인 "예조프시나"를 단행하면서 대령급 이상의 지휘관을 35,000명 숙청하게 됩니다. 소련군 지휘관 장성급 90%에 달하는 숫자는 스탈린에게 만족스러운 숫자였지만 군부를 송두리째 망가뜨리는 결과를 낳게 되면서 소련군의 지휘체계가 마비되는 지경에 이릅니다.






공산주의의 한계


소련군은 지휘체계가 무너지면서 문맹을 가진 병사들을 지휘관으로 진급시켰습니다. 자리를 메운 새로운 지휘관들은 전투를 경험해 보지도 못한 것은 물론, 교본을 제대로 습득할 수 있는 소양을 갖추지도 못하였기 때문에 당에서 시키는대로만 움직였습니다.


스탈린은 독일군에게 적극적으로 대항하지 말 것을 당부했고 소련군은 그대로 전투에 임했습니다. 다양한 전투를 통해 대응능력을 가지고 있는 독일 지휘관들과 소련 지휘부와의 커다란 능력 차이로 인해 히틀러는 승리를 자신했고 초기 전투는 히틀러의 상상대로 이루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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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원초적한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