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터리2017. 5. 14. 07:00


아시아에서 외세의 침략을 위해 일본을 중심으로 해방되어야 한다는 대동아공영권은 전쟁에 미쳐 있던 우익세력과 군부의 합작품이기는 하지만 2차대전 말기가 되면서 일본인 전부가 동조하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으로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2차대전이 벌어진 유럽과 아시아의 양상은 그다지 다르지 않았지만 스스로를 탈아입구라고 생각하는 일본의 만행은 상상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습니다.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벌어진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항변하기에는 정도의 차이가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가미카제 특공대


미국을 전쟁으로 끌어들이는 커다란 실수를 한 일본 해군은 제해권의 대부분을 미 해군에게 넘겨주었고 본토 침공이라는 현실에 닥면했습니다. 오니시 타키지로 중장이 제안한 자살특공대는 19~20세에 달하는 꽃다운 어린 청춘으로 구성되었고 사무라이 정신이라고 포장 되었습니다.


탈출을 방지하기 위해 캐노피를 용접하였고 호위 전투기들은 자살특공대가 두려워 대열을 이탈하는 조종사들을 거침없이 공격하였습니다. 일본은 자발적이고 위대한 전술이라고 목놓아 외치고 있지만 히틀러조차도 가미카제를 비난했을 정도입니다.






가이텐


해군력의 대부분이 사라진 일본 군부는 가미카제에 이어 인간 어뢰를 설계하기 시작했습니다. 2차대전의 어뢰는 정확도가 확실히 떨어졌고 명중률을 높이기 위한 기술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가미카제로 일부 성공적인 모습을 보였다고 판단한 일본 군부는 조종사를 태운 어뢰가 확실한 방법이 될 것이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가이텐으로 불리우는 인간 어뢰를 대규모로 생산하기 시작하였고 운용이 제대로 되기도 전에 항복하게 되면서 가미카제보다 알려지지 않게 되었습니다.






원자폭탄


일본 본토에 상륙하기로 계획한 미국은 민간인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방편을 찾으려고 했지만 일본 군부 뿐 아니라 민간인들도 미국과의 결전을 외쳤고 항전의 분위기는 하늘을 찌르고 있었습니다. 미국은 상륙 작전에 성공하더라도 1억에 가까운 일본인과 싸워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된 것입니다.


민간인과 군부를 구분하려고 했던 미국은 생각을 바꾸게 되었고 일본 전역을 원자폭탄으로 폭격하는 "맨하탄 프로젝트" 를 계획하게 됩니다. 히로시마에 리틀 보이가 떨어지고 수많은 민간인이 사상을 당했지만 여전히 결사항전을 외쳤고 나가사키에 두 번째인 플루토늄탄이 떨어졌습니다.






야스쿠니 신사


일본 전범들은 2차대전이 끝난 뒤에도 일본에서는 영웅으로 취급되었고 영혼을 기린다는 명분하에 야스쿠니 신사는 우익의 성지가 되었습니다. 2차대전이 끝난 지 7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지만 주변국들을 전쟁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은 반성의 기미는 보이지 않습니다.


망발을 일삼는 우경화 된 일부 정치세력과 민간인들을 구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지만 정치가들을 지지하고 있는 것은 일본 국민입니다.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일본 국민의 조사에서 46%가 찬성의 손을 들었다고 발표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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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원초적한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