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터리2014. 4. 5. 06:30

 

 

 

2차대전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을 무렵 히틀러의 광기는 극에 달하며 유태인학살에 더욱 열을 올리고 있었고 이를 바라보는 독일의 많은 장교들은 그를 제거하는것만이 독일이 나아갈 길이라고 생각하게 되고 이를 실천 할 계획을 수립하게 됩니다.

 

 

1차대전이 끝나고 독일은 군비확장을 더 이상하지 못하게 베르사유조약에 묶여 발목이 잡혀 국민들은 절망적인 나날을 보내고 있었는데 혜성처럼 나타난 나치당의 아돌프 히틀러로 인해 새로운 비젼을 보게 되면서 독일군 장교들과 국민들은 절대적으로 히틀러를 신뢰하게 됩니다.

 

 

프로이센의 명망있는 가문의 아들인 클라우스 필립 마리아 유스티니안 센트 그라프 폰 슈타우펜베르크도 독일민족을 구해낼 진정한 지도자로 히틀러를 존경하며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하여 임관하게 됩니다.

 

 

 

 

 

 

히틀러는 자신의 측근들이 권력의 중심에 서게 하기위해 모든 군인의 추앙을 받고 있는 육군 참모총장 루트비히 베크와 그 측근들을 경계했고 계략으로 국방장관 베르너 폰 블롬베르크와 육군총사령관 베르너 폰 프리치를 제거하는데 성공하는데 참모였던 에리히 폰 만슈타인도 야전으로 밀려납니다.

 

 

수족을 잃은 루트비히 베크 육군참모총장은 나치와 히틀러에게 감정을 품게되고 반나치세력의 중심에 서게 되는데 이후 독일은 겨울전쟁에서 핀란드에게 굴욕을 당한 소련을 침공하기 위해 바로바로사작전을 계획하고 소련과의 전쟁이 시작됩니다.

 

 

핀란드에게 쩔쩔매던 소련은 의외의 반격을 취해왔고 11월이 시작되면서 동부전선은 답보상태를 유지하게 되는데 남부집단군 사령관인 게르트 폰 룬트슈테트를 필두로 하인츠 구데리안, 에리히 폰 만슈타인, 귄터 폰 클루게등 쟁쟁한 장군들이 모두 전선에서 고전하고 있었습니다.

 

 

 

 

 

 

독일내에서 히틀러의 입지가 흔들리고 있었고 동부전선에서 직접 작전을 하달하는 히틀러를 보고 많은 참모들 특히 슈타인펜베르크는 실망을 하게 되면서 히틀러 암살계획이 급물살을 타게 되는데 이때가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성공한 6월이었습니다.

 

 

육군참모총장을 중심으로 예비군 부사령관 프리드리히 올브리히트, 예비군 사령관 프리드리히 프롬, 알브레히트 메르츠 폰 크비른하임, 에르빈 폰 비츨레벤원수가 참여의사를 내비쳤고 동부전선의 젊은장교인 오스터중령과 트레슈코프소장도 뜻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작전명 발키리로 불리우는 히틀러 암살작전은 원래 예비군을 동원해서 수도인 베를린을 지키기 위한 작전이었지만 예비군 사령관과 부사령관을 베크가 끌어들이면서 쿠테타작전이 되었는데 히틀러는 라슈텐부르크의 볼프샨체에서 전선을 지휘하고 있었기 때문에 슈타우펜베르크가 직접 볼프샨체로 들어가게 됩니다.

 

 

 

 

 

볼프샨체는 워낙에 경비가 삼엄하고 나치의 친위대가 상주하고 있어서 결혼반지조차 가지고 들어가기 어려울정도여서 슈타우펜베르크는 플라스틱폭탄으로 히틀러를 암살하려고 했고 캡슐을 녹여서 뇌관을 터뜨리는 방식을 습득하기 위해 많은 연습을 했습니다.

 

 

북아프리카에서 영국군의 공습로 한쪽눈과 오른팔, 왼쪽 손가락 2개를 잃은 그에게는 여간 어려운일이 아니었지만 성공했고 그가 폭탄을 설치하고 볼프샨체을 나설때 폭탄이 터져 히틀어의 외투에 누군가가 쌓인채로 병원으로 실려갔는 걸 보고 슈타우펜베르크는 작전이 성공했음을 확신했습니다.

 

 

4명이 사망하고 6명이 부상을 입었지만 히틀러의 암살은 실패했고 베를린에서 쿠테타를 준비하던 반나치 동료들은 잠시 장악을 했지만 이내 나치친위대와 게슈타포에 의해 체포가 되는데 예비군 사령관인 프리드리히 프롬은 눈치를 보며 가담에 소극적이었다가 발각이 되자 가담자들을 바로 사형에 처합니다.

 

 

 

 

 

 

자동차 불빛앞에서 차례대로 사형을 당했고 슈타우펜베르크는 위대한 독일이여 영원하라는 말을 남기고 죽게 됩니다. 히틀러는 슈타우펜베르크라는 성을 가진 사람을 모두 죽이라고 명령하고 아내인 니나는 수용소로 가고 다섯아이들은 마이스터라는 성을 쓰며 고아원으로 가게 됩니다.

 

 

프리드리히 프롬은 다음해에 쿠테타 가담이 발각되어 사형되고 직간접 가담자 7000명중 5000명이 죽임을 당했고 귄터 폰 클루게와 에르빈 롬멜은 자살을 강요 받아 자살했으며 많은 명장들이 사라졌고 얼마후 독일은 패망하고 히틀러도 자살을 하게 됩니다.

 

 

전후 큰아들인 베르트홀트는 서독군에 임관하여 육군소장으로 전역했으며 아내인 니나는 92세인 2006년에 별세했습니다. 작전명 발키리는 "720쿠테타" 로도 불리우며 클라우스 폰 슈타우펜베르크는 나치에 항거한 위대한 군인으로 독일인의 가슴에 남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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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원초적한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