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터리2017. 4. 11. 07:00


일찌감치 서양 문물을 받아들인 일본은 군사강국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고 꿈이었던 중국 침공에 한 발짝 앞으로 나서게 됩니다. 동아시아의 헤게모니를 차지하면서 아시아 전체의 별이 되고자 하는 희망을 품게 되었고 무서운 기세로 성장을 했습니다.


2차대전이 발발하면서 중국을 본격적으로 침공했고 공산당과 국민당으로 갈라졌던 중국의 혼란은 외세를 기반으로 국공합작이라는 대의 명분을 갖게 됩니다. 쉽게 정복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한 일본의 오판은 날이갈수록 끝을 볼 수 없었고 병력과 물자난에 시달리게 됩니다.






진주만 기습공격


인도차이나의 많은 자원이 필요했던 일본은 가쓰라 테프트 조약으로 억매인 상황을 반전시키기 위해 미국과의 협상을 요구했고 미국은 적극적이지 않았습니다. 협상 테이블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겠다는 일념은 진주만 기습공격이라는 아이디어로 이어졌고 군부는 자신감에 차있었습니다.


태평양에서 가장 높은 전력을 보유하고 있던 일본 해군 사령관 야마코토 이소로쿠는 승리를 자신했습니다. 진주만으로 출격한 나구모 주이치 제독은 성공적으로 임무를 수행했으나 일본 군부의 예상과는 달리 미국은 태평양전쟁에 참전을 결정하게 됩니다.


나구모 주이치 제독은 미군 주력 항공모함들이 항구에 없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작전에 성공한 것에 도취되어 퇴각을 했습니다. 야마코토 이소로쿠는 항모들을 모두 제거하기를 바랬지만 지휘관에게 전권을 일임하는 불문륜을 지키기 위해 압박을 하지 않았고 미드웨이에서 패전을 맛보게 됩니다.






카미카제 자살특공대


전쟁 역사상 가장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전술로 치부되고 있으며 지금까지도 이해할 수 없는 일본 군부의 결정으로 비판되고 있는 전술입니다. 잔혹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나치 조차도 자국민들의 안위를 끔찍하게 챙겼음에도 불구하고 일본 우익을 자비가 없었습니다.


보급이 줄어들면서 제대로 전술을 펼칠 수 없었고 해군의 주력 함대가 무너지면서 제공권 마저 미국에게 내주게 되었으며 본토 공습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 벌일 수 있는 최후의 수단이었다는 변명하고 있지만 자살을 강요한 일본 군부의 광기에 대한 평가는 여전히 회의적입니다.


항공기 이외에도 자살 어뢰와 보트까지 제작되고 있었다는 것이 전후에 알려지면서 일본 군부는 비난의 화살을 피할 길이 없었습니다. 패전을 하며 굴욕을 겪기도 했지만 자국민을 제대로 보살피지 않은 미개한 군부라는 오명은 역사의 한 페이지로 남게 되었습니다.






군부의 고집


전쟁이 말기로 접어들면서 일본은 전력의 대부분을 상실했고 식민지에서 병력을 겨우 보충하면서 발악하기에 급급했으나 군부의 일부 장성들은 최후 항전을 고집하며 미국에 대항하기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일본의 자존심을 지켜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습니다.


천왕 히로히토는 전선의 상황이 일본에게는 절대적으로 불리하다는 것을 알았으나 군부의 기세에 눌려 기를 펴기가 어려웠습니다. 미국은 무조건 항복을 전달했으나 자주적 통치권을 요구하면서 조건부 항복 정도는 합의할 수 있다는 불손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핵폭탄으로 일본 전역을 공격할 맨하탄 프로젝트가 완전히 준비되어 있었다는 것을 일본 군부는 파악하지 못했고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과 수소폭탄을 투척당하면서 무조건 항복에 동의하게 됩니다. 군부의 고집이 없었다면 원폭이 투하되는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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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원초적한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