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터리2017. 3. 16. 07:00


오스트리아 태생의 아돌프 히틀러는 세계 1차대전에서 패전하여 금수조치에 취해진 독일의 상황을 상당히 비판하게 되었습니다. 게르만의 위대함을 주장하며 독일이 세계의 주도권이 되어야 한다는 전체주의는 현명하기로 소문난 독일을 하나로 뭉치게 했습니다.





히틀러 옆에는 그를 주총하는 공군 참모총장 헤르만 괴링, 선전부장 요제프 괴멜스와 우수한 육군장성들이 즐비했습니다. 완벽을 추구하는 게르만민족의 특성과 합해져 당시로서는 흉내내기 어려운 수준의 무기를 개발하고 전력을 증강했습니다.


전격전을 창시한 하인츠 구데리안과 낫질작전을 입안한 에리히 폰 만슈타인, 사막의 여우 에르빈 롬멜, 히틀러의 소방수 발터 모델, 타이거의 에이스 미하일 비트만이 활약하는 전선은 굳건했습니다. 파죽지세로 서부전선을 침략한 독일에게 거칠 것이 없었고 유럽은 곧 히틀러의 것이 될 것으로 예상되었습니다.





지리적인 위치가 장점인 영국만이 유일하게 본토를 지키고 있었고 윈스턴 처칠만이 외로운 고뇌에 빠져 있었습니다. 미국이 참전을 결정하기를 간절히 원했지만 미국은 유럽과 태평양에서 이익만을 취할 뿐 참전의 의사를 밝히지 않았고 처칠은 악전고투를 하게 됩니다.


겨울전쟁에서 핀란드에게 대패하면 퇴각한 모습을 본 히틀러는 독소불가침조약을 파기하고 동부전선에 모든 병력을 집중시키고 소련을 침공합니다. 바르바로사작전으로 전광석화와 같이 소련을 항복시킬 것을 기대했지만 히틀러의 바램은 꿈이 되었습니다.





유럽의 대부분을 전장으로 화염속에 휩싸이게 한 히틀러는 유태인에 대한 증오가 심하였고 그들을 탄압하는 별도의 기관을 운용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광기를 가진 독재자로서의 면모를 나타내기도 합니다. 기행에 가까운 유태인의 탄압은 측근들에게까지 반감을 갖기에 충분했습니다.


나치당의 총통으로서 당대 유럽전역에서 무소불휘의 권력을 휘둘렀던 아돌프 히틀러지만 그에게도 두려움이라는 단어를 존재하게 하는 인물이 있었습니다. 히틀러가 두려움라는 단어를 인식하게 한 인물은 치과 주치의 휴고 블라쉬케입니다.





채식주의자였던 히틀러는 고기를 먹지 않는 대신 하루 1kg에 달하는 초콜릿을 섭취했고 오랜 기간 지속된 안좋은 습관으로 인해 50세가 되기 전에 정상적인 치아가 2개 정도 밖에 남지 않았고 대부분 치아를 치과치료로 대신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히틀러의 치과 주치의였던 휴고 블라쉬케는 치과치료를 위해 자주 히틀러를 면접했고 치과치료를 두려워했던 히틀러는 휴고 블라쉬케와의 만남을 상당히 꺼려했습니다. 히틀러의 대부분의 치아는 틀니로서 금으로 만들어져 있었으며 이를 제작한 장본인도 휴고 블라쉬케였습니다.





당시 틀니는 금으로만 만들 수 있었고 금을 구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휴고 블라쉬케는 금을 수배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아이러니는 히틀러가 그토록 증오하던 유태인들이 가진 금니를 모아 히틀러의 틀니를 만들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습니다.


금을 찾아해메던 블라쉬케의 부하가 유태인 수용소에서 5kg의 금을 확보했단 편지가 주당을 뒷바침하는 근거가 되고 있습니다. 독일의 역사학자 헨릭 에버를은 자신의 저서에서 편지를 제시하며 주장을 했고 상당한 부분이 사실로 밝혀져 정설이 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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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원초적한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