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터리2014. 3. 19. 14:34

 

 

 

조선 최초로 왕세자를 거치지 않고 왕위에 오른 인물이 바로 수양대군으로 조카인 단종을 밀어내고 왕위를 찬탈해서

지금까지도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태종에 이어 다시 한번 피바람을 불게한 계유정난은 이미 예견된 사건으로 약간의 견제만 있었다면 실행이 어려울수도 있는 일이었습니다. 세종대왕은 문종을 합하여 적통의 대군만 7명을 두고 있었는데 이는 왕권이 확립되지 않은 조선의 미래를 걱정해서 가진 생각이었습니다.

 

 

세종대왕과 조선왕조에게 문종의 왕위계승은 상당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는데 태조 이성계가 나라를 세운후 한번도 장자가 왕위를 계승한적이 없었기 때문에 다른 대군들이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오직 문종의 계승을 고집했습니다.

 

 

이를 알고 있었던 대군들도 아버지의 뜻을 따라 문종의 왕위계승에 별다른 내색을 하지 않았으며 왕위에 욕심을 가지고 있었던 수양대군도 세종대왕이 살았을때는 정치에 욕심이 없다는것을 보이기 위해 주로 사냥을 다니거나 궁밖에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어릴적부터 인품과 학식이 뛰어났고 천문학과 산술에 뛰어난 실력을 보여주기는 했지만 왕위를 이어나가기에 문종은 병약했습니다. 세종이 병세가 들면서 수렴청정을 하게 되었고 건강이 더욱 악화되어 결국에는 39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승하하며 왕권을 흔들리게하는 원인을 만들어줍니다.

 

 

세종대왕은 둘째인 수양대군에게도 애정이 있었다는것을 알 수 있는것이 무술에 뛰어나고 화통한 성격을 가지고 있어서 문종의 왕위에 위협이 있었지만 정치에 관심이 없는 모습을 보여왔고 자신을 도와 왕권확립에 힘을 기울였기에 적극적인 견재를 하지 않았습니다.

 

 

한글을 창제할때 많은 반대에 부딪히며 어려움을 겪고 있었을때 적극적으로 나서준것도 수양대군이었고 왕실을 지켜낼 믿음도 수양대군에게있었기에 세종은 수양의 봉작을 4번이나 바꾸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와 큰형인 문종이 승하하자 수양의 마음은 파도처럼 일렁이기 시작하고 집현전 학자들을 위시하여 안평대군이 왕위를 차지하려는 움직임이보이자 수양도 서둘러 사람을 모으게 되고 권람과 한명회를 만나게 되면서 급물살을 타게 됩니다.

 

 

 

 

 

 

 

세종과 문종은 단종의 안위를 집현전 학자들과 공신에게 부탁했는데 만약 수양대군이나 안평대군에게 부탁을 했으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정치에 대한 욕심은 있었지만 장자의 계승을 우선시 했던 세종의 뜻을 따르려고 했던 수양대군의 심성으로 유추해볼때 수양에게 단종의 안위를부탁했다면 다른 결과가 나왔을수 있을지 모릅니다.

 

 

문종을 위해서 수양대군을 적극적으로 견재할수 있는 방법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고 그로 인해 결국은 계유정난이 일어나게 됩니다.역사에는 만약에는 없지만 만약에 그랬다면 조선의 역사는 지금과는 상당히 다른 방향으로 흘러 갔을것입니다.

 

 

세조는 세종이래 많은 업적을 이뤘지만 조카의 왕위를 빼앗다는 평가에서 벗어날수가 없습니다.

왕권이 확립되지 않은 조선초기의 상황에서 세종의 선택은 불가피했지만 이로 인해 피의 역사가 다시 반복되는 결과가 발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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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원초적한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