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터리2017. 2. 27. 07:00


전체주의를 강조한 독일 나치당의 아돌프 히틀러가 총통이 되면서 유럽에는 전운이 감돌았고 폴란드를 침공을 성공하면서 세계 2차대전이 발발하게 됩니다. 전격전을 앞세운 독일은 낙후된 유럽의 전장을 휩쓸었고 서부전선의 최강자로 불리웠던 프랑스를 침공하기로 결심합니다.





전격전을 창시한 하인츠 구데리안에 이어 낫질작전을 입안한 에리히 폰 만슈타인의 구상은 프랑스의 허를 찔렀고 서부전선은 독일의 손아귀에 들어가게 됩니다. 섬나라인 영국만이 자국의 영토를 지키며 선전하고 있을 뿐 유럽 전역은 독일군의 차지였습니다.





독소협상을 맺은 독일의 입장에서는 공산주의를 주창하는 소련이 그다지 맘에 들지 않았지만 명분을 찾기 전까지는 협상을 지킬 수 밖에 없습니다. 핀란드를 침공한 소련이 겨울전쟁에서 고전하다가 퇴각하는 것을 본 히틀러는 소련을 침공하기로 결심합니다.


서부전선과 동부전선으로 나뉘어졌으며 파죽지세의 독일군은 보급선이 길어지면서 고전을 겪게 됩니다. 영국의 수상 윈스턴 처칠은 대서양을 건너 미국이 유럽 전장에 개입하기를 바랬지만 반전 여론이 강한 미국은 좀처럼 움직일 기미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독일과 연합군에게 무기를 공급하면서 막대한 이득을 취하고 있었고 1차대전에서 유럽에 참전하여 피해만 본 경험을 가지고 있었기에 미국은 최대한 유럽 전장을 피하고 싶었습니다. 태평양과 유럽 전장은 독일과 일본의 세상이었지만 미국은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보급선이 길어지면서 독일군은 서부전선에서 연이은 참패를 겪었고 전세가 기울어져가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독일의 우세를 점쳤던 미국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고민스럽고 우려했던 상황이 벌어지게 된 것입니다.





서부전선과 동부전선이 교착상태로 오랜 기간 버텨주기를 바랬던 미국의 기존 입장이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혹시라도 소련이 독일에게 승기를 잡고 유럽 전역을 점령한다면 유럽은 공산주의 일색의 대륙이 될 가능성을 미국 발견했고 기존의 입장을 고수할 수만은 없어진 상황이 된 것입니다.


동부전선은 서서히 무너졌고 독일군은 방어전에 능한 육군 장성들을 대거 포진하게 됩니다. 북아프리카에서 '사막의 여우' 로 불리웠던 에르빈 롬멜 장군을 노르망디에 배치했고 히틀러의 소방수 발터 모델을 소련 앞에 배치했습니다.





공산화를 우려한 미국은 파병을 결심했고 효과적으로 프랑스를 점령할 수 있는 계획을 수립하게 됩니다. 영국에서 대기 중인 병사들을 독일로 향할 수 있게 대규모 해안 침투 계획을 입안했고 실행에 옮기게 됩니다. 2차대전의 분수령 "노르망디 상륙작전..."


연합군과 독일군 사이에는 치열한 정보전이 앞세워졌고 칼레가 상륙지가 될 것이라는 루머는 독일에게는 확실한 정보로 인식되었습니다. 독일의 눈을 속인 연합군의 대규모 육군 상륙작전이 성공하면서 미국은 본격적으로 2차대전 속으로 뛰어들었고 동부전선의 소련군을 당황하게 만듭니다.





동유럽과 서유럽까지 노렸던 소련의 속내가 드러나게 되었고 미국이 개입하면서 절대적인 우위의 지위를 가질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처칠 수상의 바람대로 미군의 참전은 연합군 승리의 초석이었고 2차대전의 종지부를 찍는 극적인 반전이 된 것입니다.


독일이 소련을 침공하지 않았거나 승전했다면 미군의 개입을 더욱 늦어졌을 것이고 서유럽은 독일의 발아래 식민지가 될 수도 있는 아찔한 결과가 예측되기도 했습니다.



반응형
Posted by 원초적한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