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TO2016. 9. 20. 06:00




사회전반에 걸친 현상이기는 하지만 자동차시장에서도 이분법은 정의가 되고 있습니다.


다양한 의견이 존재할 수 있다는 전제가 없으며 보편의 타당이 정의로 굳어진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각자의 주장에 대한 옳고그름의 방향이 아닌 성향과 취향의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르기 때문에 겪는 선택의 불편함이 있을 수 있지만 오너가 느끼는 감성은 보편의 법주와는 다를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손가락을 열개를 두 번이나 접었다가 펴야할 정도로 많은 브랜드와 그의 몇 곱절의 유저들이 존재하고 있는데 다양한 의견이 존재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나와 의견이 다르고 보편적이지 않다는 이유를 들어 비난하거나 힐난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확증에 대한 편향은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누구에게나 나타날 수 있는 현상이고 견문을 겸비하고 있는 현자의 넓이처럼 유저들의 그릇이 크지 않다는 것도 알 수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한 이분적인 사고는 안타까움을 자아내게 합니다.


다수의 폭력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분위기는 상당히 위험한 수준에 올랐다고 할 수 있습니다.





스스로의 주장과 다르다는 것, 다수의 의견과 다르다는 것은 그저 다른 것입니다. 빠와 까로 나뉘어서 설전을 벌이고 종국에는 싸움으로 번지는 경우는 유치함의 끝을 보이며 감정 대립을 번져나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국시장에서 자동차의 대한 인식이 특별하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지만 비뚤어진 이분법적인 대립은 바람직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소수가 가진 의견을 정의가 아니라고 판단하고 자신의 주장대로 설득하려는 것은 오지랍을 넘어선 만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상 어느 누구도 그러한 권리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 안쓰러울 뿐입니다.





다양한 의견이 묵살되고 반영되지 않을 수 있지만 소수가 다수보다 더 나은 결과를 가져다 준 것을 역사에서 종종 발견할 수 있습니다.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것은 헛소리에 가까운 주장이었고 세상을 어지럽히는 유언비어라고 재판에 회부되기는 했지만 현세에서 판단은 확실히 달라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흑과백으로 나누어 판단하는 것은 우를 범하기 쉬운 사고라고 할 수 있으며 다름을 두고 옳고그름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후진적인 발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동차시장의 절대적인 정의가 있다고 믿는 유저들은 그들의 방식을 고수하는 것이고 아니면 아닌 방식을 택하는 것입니다.


시장에 좋은 평을 듣고 있다는 것이 정의이고 이에 반하는 의견의 부정이라는 사고는 근시안적이며 구시대적인 발상입니다. 이분적인 사고는 정치적인 성향이 강하고 이를 이용하려는 세력들의 전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연하고 다양한 사고가 21세기 자동차시장에 필요한 덕목이라는 것을 유저들도 알 때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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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원초적한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