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다 노부나가가 일본통일을 계획하고 박차는 가하는 동안 두명의 야심가는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토요토미 히데요시와 도쿠가와 이예야스는 오다 노부나가가 죽자 자신들의 본심을 드러내기 시작했는 데 명분을 가진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전면에 나서게 되었도 일본통일을 이뤄냈다.
일본통일을 이룬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명나라를 정복하려는 야심을 가지고 조선에 협력을 요구했다. 조선은 아버지의 나라인 명나라를 정복하는 데 협력할 수가 없었고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우유부단함에 빠져 갈 곳을 잃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수차례의 통신사 파견에도 답을 얻지 못한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조선을 침공한다.
조선은 개국 초기의 왕권의 흔들리는 형국이 세조에 들어서면서 안정이 되어 꽤나 안정적인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백성들은 권세가들에 의해 궁핍해져 있었으나 커다란 혼란을 겪지는 않았고 그러 삶을 유지하고 있었다. 조정의 대신들만이 정치적인 암투로 혼탁해져 있었을 뿐 백성들을 주변국의 상황을 알 턱이 없었다.
조선 침공 전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많은 정보원을 조선에 보내 군사력을 알아보게 한다. 당시 조선을 방문했던 상인, 승려들이 토요토미 히데요시에게 정보를 제공했는 데 조선의 군대는 없다는 보고였다. 이런 보고를 듣고 토요토미 히데요시와 그의 수장들은 적잖이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자신들은 수만의 군사를 보유하고 있는 데 군대가 없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에 재차 정보원을 보내 조선의 상황을 살폈고 그 정보다 틀리지 않다는 것을 알게되어 임진년에 조선으로 향하게 된다. 정보원들의 정보는 정확히 맞았고 조선땅에 발을 들인지 불과 20일만에 한양까지 진격할 수 있었다.
임진왜란사에 나오는 군대를 보면 장수보다는 의병들이 많았던 이유가 바로 이 것이다. 선조는 조총으로 무장한 일본의 무기 때문에 승리를 할 수 있었다는 변명을 했지만 조총은 그리 파괴적인 무기가 아니었다. 오랜 태평성대와 정치적인 혼란이 이유였지만 선조는 애써 다른 핑계를 대기에 바빴고 한양을 버리고 의주로 도망을 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