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터리2015. 10. 18. 22:46



영국이 해군교본에 실어 놓은 세계 3대 해전은 살라미스해전,칼레해전, 트라팔카해전이다. 트라팔카해전은 영국 제독 넬슨이 진두한 해전으로 유럽 고대해전에서 괜찮은 결과를 가져 온 해전만을 선정한 느낌이다. 3대 해전이외에도 일본에서는 쓰시마해전, 미국에서는 미드웨이해전을 4대 해전으로 언급하고 있다.


이런 해전들과는 비교되 되지 않는 해전역사를 우리는 가지고 있다.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중에 쌓은 업적이 그 것인 데 일본과의 해전에서 단 한 번도 패하지 않는 위대한 업적을 가지고 있으며 13척으로 133척을 격파한 명량해전이 최고의 해전이라고 평가되고 있다.




한산도해전을 최고의 해전으로 평가하는 경우가 중론이지만 임진왜란의 신의 한 수는 역시나 명량해전이다. 칠천량해전으로 사기가 하늘을 찌르던 일본해군이 명량해전에서 참패하면서 전선의 보급로 확보가 어려워졌고 이듬해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사망하면서 길고 긴 임진왜란이 끝나는 계기가 되었다.


이순신 장군은 근현대까지 내려오는 선상에서의 백병전을 버리고 화포로 진행하는 전술을 창시했다. 이를 위해 판옥선과 거북선을 설계하게 되었으며 일본해군과는 달리 선회에 능하고 단단한 구조를 가지게 된다. 일본은 나무판을 쇠못으로 고정하는 방식을 취해 배의 견고함이 나무못으로 고정하는 조선수군의 배보다 약했다.


앞과 뒤를 뾰족하게 설계하는 당시의 배의 건조방식을 탈피해 둥글게 설계하였는 데 이는 배의 선회가 그자리에서 이루어질 수 있었다. 한 쪽의 화포를 쏘고 다시 장선하는 시간까지 반대로 선회를 해서 공격하는 데 유리하게 설계되어져 있었고 이런 조선의 배에 일본수군은 매 번 패배를 겪을 수 밖에 없었다.


당시 화포를 제작할 기술력을 가지지 못한 일본은 조총으로 전투에 임했고 상대적으로 견고하지 못한 배의 성능 때문에 화포를 수입하더라도 선상이 아닌 배의 상부에 설치했었다. 조선수군이 승리를 거두는 데는 전술에 맞는 우수한 판옥선을 만들어 내 이순신 장군의 공로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명량해전은 단순히 진도 앞바다 울돌목의 조류만을 이용했다는 것은 조금 사실과 다르다. 일본의 구로시마수군의 본거지가 울돌목과 비슷한 시코쿠 미야보지역에 있었기에 빠른 조류와 소용돌이에 더 익숙해져 있었고 울돌목을 이용해 자신들이 더 나은 위치로 해전을 이끌어 갈 계산도 되어 있었다.


이런 사실을 모두 알고 있던 이순신 장군은 진도대교가 위치한 가장 최단에 4톤 가량의 쇠로 만든 사슬을 숨겨 두었다. 양쪽에서 당겨 쇠사슬을 올라오게 해서 빠른 물살을 이용해 진격하는 일본수군에게 피해를 주었고 그 앞에서 함포사격으로 배를 격침 시킨 것이다.


물 때가 바뀌면서 일본수군이 물살을 반대로 맞으며 전열은 흩어졌고 이를 추격하며 나머지 배들을 수장 시켰다. 명량해전에서 아군의 사상자는 사망 2명, 부상3명이었고 단 한 척의 손실도 없었다. 일본은 31척의 배가 완파되었고 90척의 배가 반파되었으며 9000명 중 3500명이 사망 4500명의 도주했다.


세계 3대 해전과 비교해도 엄청난 전과이다. 이로 인해 일본해군은 다시 본진으로 후퇴를 했고 다음 해에 사망한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뒤를 이은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경종을 주며 임진왜란을 끝내게 된다. 툐요토미 히데요시에 비해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정복욕이 그다지 큰 인물이 아니었다.


일본이 러일전쟁 중에 자랑스럽게 언급하는 쓰시마 해전을 이끈 도고 제독은 이순신의 학익진 전법을 응용했다고 기록했고 자신의 롤모델은 이순신 장군이라고도 했다. 그의 기록에 이순신 장군에 대한 오마쥬가 가득하고 이순신 장군에 대한 언급도 수차례 나오는 데 장군이 얼마나 대단한 인물인지 알 수 있다.


도고 헤이하치로 

"나를 영국의 넬슨 제독과 비교해도 좋습니다. 그러나, 조선의 이순신 장군과는 견줄 수 없습니다. 이 도고가 다시 태어난다고 해도 이순신 장군은 따라 갈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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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원초적한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