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TO2015. 10. 4. 22:08



BMW가 세계적인 브랜드로 성장해서 메르세데스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게 만들어 준 모델이 있다. 키드니 그릴과 럭셔리를 표방하던 비머가 경영난을 겪고 있던 50년대에 만들어진 700의 공은 가히 최고라고 할 수 있다.



바이에른주의 자동차 회사라는 이름 Bayerische Motoren Werke의 전통을 이어가기엔 너무도 어려운 시기의 BMW는 키드니와 럭셔리를 버리고 컴팩트를 추구하게 된다.



지금의 비머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모델인 700은 군더더기 없는 간결한 모습이었지만 메르세데스와의 합병까지 놓였던 위기를 극복하기에는 여력이 없었던 회사에게는 선택의 폭이 크지 않았다.







비머의 로고를 달고는 있지만 지금의 BMW와는 조금은 다른 모습의 700은 누적 판매량 18만대라는 기록을 세울 만큼 많은 판매고를 기록했고 훗날 1500을 생산하기까지 비머를 지탱해 준 효자 모델이었다. 700의 판매가 없었다면 지금의 BMW는 메르세데스 산하의 브랜드가 될 수도 있었을 정도로 당시의 비머는 심각한 처지에 놓여 있었다.







북미에서는 507 로드스터가 인기를 얻고 있었지만 수익을 안겨주는 모델은 아니었고 독일내수에서 507로는 승부하기가 어려운 정도로 독일의 경제력은 바닥을 치고 있었다. 폭스바겐이 국민차로 명성을 이어나가고 있었고 메르세데스는 럭셔리로 선두에 나서고 있었기 때문에 BMW의 경영진은 지금의 위기를 빨리 극복하기를 바랬다.






폭스바겐이 나치에게 협조하며 성장한 것처럼 BMW도 2차대전 동안 항공기 엔진을 생산하면서 기초를 다진 기업이었기 때문에 2차대전이 끝나고의 경영난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을 수도 있다. 지금이야 세계적인 브랜드로 럭셔리의 이미지를 가진 기업이지만 당시에는 가성비가 높은 자동차를 생산하는 것이 기업의 입장에서 더 나은 선택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BMW 700에도 지금과 같은 비머의 로고가 선명하게 박혀 있지만 지금의 모습과는 상당히 다른 모습이다. 700에 이은 1500의 성공으로 3시리즈, 5시리즈, 7시리즈를 개발 할 수 있었고 바이에른의 프로펠러가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2차대전에 협조한 기업이라는 이유로 독일 브랜드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일제차와 더불어 세계적인 기술력을 가지고 있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BMW 입장에서는 흑역사였던 700이 기업을 살린 공신이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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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원초적한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