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가 작금에도 회자되는 것은 엄청나게 방대한 사료 때문이고 사료를 이전 시대와 다르게 보존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역사라는 것이 강자에 의한 기록이기는 하지만, 조선시대 사료는 여지를 후대에 전해주고 있다.
방대한 기록 중에 나타난 많은 왕 중에서 가장 등신 같은 왕 세 명을 뽑으라면 당연히 선조, 인조, 영조이다. 두 번의 환란에서 능력이 모자란 븅신이라는 것을 증명한 것이 선조와 인조였다면 영조는 자식을 죽인 패륜 개쓰레기일뿐이다.
영조를 대왕이라고 칭송하고 치적을 평가하지만, 당시 기득이었던 노론에 의한 추켜세움이었다는 것이 자명하다. 조선시대 패륜을 보인 왕이 몇 있었고 인성이 더럽고 변태 성향을 가진 왕도 있었으나 영조는 기록된 것으로 유추해도 최악이 틀림없다.
어머니가 가진 핸디캡으로 인해 왕이 되었을 때 노론의 눈치를 살피며 개꼽을 살았고 탕평책이라고는 하지만, 주요 직책은 어차피 노론이라는 개한테 전부 내주었다. 영조가 쓰레기라는 것을 극단적으로 증명한 것은 아들인 '사도세자' 죽임을 주도한 일이다.
포악하다고 알려진 세조가 조카인 단종을 죽여 최악이라는 타이틀을 거뭐쥐었으나 정확하게 말하면 조카는 직계존속은 아니다. 형인 문종을 선택한 세종대왕의 착오도 한몫을 했고 능력 위주라는 범주에서 세조는 능력을 가졌던 대군이 맞다.
조선에 많은 스토리 중에서 아들을 죽인 것은 영조가 유일하다. 아들을 죽인 개쓰레기라는 오명을 피하려고 여러 가지 머리를 굴린 것은 너무나 역겹다. 오뉴월 땡볕에 몸도 움직일 수 없는 뒤주에서 7일 동안 서서히 죽음을 기다리는 것은 너무 공포스럽다.
철천지 원수가 아니고서는 이러한 발상조차 하기 어려운 일을 자신의 뜻에 거슬렀다고 아들을 처형했다. 일부 "어쩔 수 없는..." 이라는 개소리를 하는 식자도 있던데 세상 어느 아버지가 어쩔 수 없어 자식을 뒤주에 가둬 죽이나?
그런 개소리를 시전 하는 것은 노론이거나 노론에 뿌리를 가진 비뚤어진 사관의 발로이다. 선조나 인조는 새가슴에 판단력이 흐린 븅신이라면 영조는 왕이 아니었다면 극형으로 처형되어도 당연하다. 유자의 나라인 조선이 아니라도 아들을 죽인 것은 개또라이가 아니면 할 수 없다.
현 세대에서 아버지가 아들을 뒤주에 가두어서 7일 동안 감금해서 죽였다고 가정해도 어떠한 명분을 앞세워도 용납될 수 없다. 길에 버려진 길냥이나 강아지에게 해꼬지하는 것에 대해 울분을 토하는 것을 봤으나 사도세자에 일말의 동정을 갖는 자가 드문 것은 웃긴 일이다.
52살이나 어린 여자를 계비로 들인 것만 보아도 영조가 얼마나 비정상이고 욕심 가득한 인간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그 계비는 사도세자의 아들인 정조대왕 즉위를 노론 씹새들을 앞세워 막아서는 모사를 꾸몄고 독살을 했다는 합리적 의심까지 갖게 만든 쌍년이다.
정조 대왕이 승하하신 1800년 이후로 조선은 급격하게 노론 씹새들에 의해 개판이 되었고 왕권이 약화되면서 일제강점기까지 맞게 된다. 역사에 가정은 아무런 의미가 없으나 영조가 노욕을 위해 선택한 쌍년으로 인해 조선은 패망의 길로 들어섰다.
이런 쓰레기 왕에게 대왕이라는 칭호는 가당치도 않다. 일국의 왕이라는 작자가 벌인 백정보다도 못한 짓거리를 두고 지나가는 개 한 마리 죽인 것으로 평가되는 것이 정말 엿같다. 개인적으로는 영조 무덤에 육두문자라도 실컷 시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