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맘대로2019. 9. 30. 17:27

 

 

살면서 대규모 집회라는 공간에 합류해 본 첫 경험이다.

 

광화문 집회가 열릴 때는 확신이 부족했고 참여 의지도 부족했다. 응원하는 마음과 질타는 있었지만, 행동에 나서는 것을 염두하지 않았다.

 

 

 

서초대첩이 열린다는 소문이 돌자마자 숨도 쉬지 않고 참전을 결정했다. 아마도 내가 당사자였다면 최소 10년의 징역형을 받을 수도 있겠다는 엄청난 위기감 때문인지 모르겠다.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면서 공권력이 가진 무자비함을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느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동생 가족과 만나 서초역으로 걸어가는 동안 20만을 기준으로 했다. 지난주 3만여 명이었으니 20만 정도 되면 성공적인 집회가 되지 않겠냐는 희망 섞인 우려는 헛된 것이었다.

 

서초역에 도착하기 전부터 수없이 몰리는 인파에 놀랐다. 인파의 많은 수가 연령이 높은 중장년이라는 점에 불안감이 엄습했다. 태극기 집회가 열린다는 소문이 있었고 태극기 참가자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모든 예측과 예상은 빗나갔다. 끝을 알 수 없는 인파는 한마음이 되어 "조국수호", "검찰개혁" 을 소리 높여 외치고 있었고 뒤이어 도착하는 인파가 멈추지 않았다. 

 

성모병원부터 예술의 전당 전부를 메웠다는 소식이 완벽하게 사실인지 확인할 수 없다. 인산인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의 인파를 눈으로 확인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좁은 통로를 통해 무대 앞까지 나간 경험으로 서초역부터 성모병원까지의 인파는 확실히 확인할 수 있었다.

 

한 번도 자발적인 지지를 받아보지 못한 그쪽에서는 예상을 빗나가지 않고 규모 축소를 들고 나왔다. 얼마나 부러운 일일까를 생각해 보면 당연한 반응이라고 할 수 있다.

 

한쪽 구석에 찌그러져 몇 백으로 대응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들이 가진 목청 좋은 발성자와 스피커 성능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태극기가 위치했던 중간에는 엄청난 소음으로 인해 귀청이 떨어져 나갈 지경이었다.

 

집회가 진행되는 동안 몇 번의 울컥거림을 느끼며 마지막으로 고하는 멘트를 뒤로 하고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공정하고 투명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 생각보다 지난하고 어렵다는 걸 실감한다.

 

숫자를 가지고 시비하고 있으나, 그들이 간과한 것이 있다.

 

9월 28일 서초대첩은 서막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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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원초적한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