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전 이전까지 미 육군 제식 소총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대인 저지력'이었다. 태평양전쟁을 통해 해병대가 대인 저지력으로 인해 고생을 했던 경험이 육군과 해병대 장성들의 머릿속에 깊게 자리 잡았고 제식 소총은 무조건 강력해야 한다는 개념이 이어졌다.
세계 2차대전 이후 독일군이 사용하던 제식 소총 StG 44를 기반으로 한 아말라이트사의 AR-15가 세상에 선을 보였으나 미 육군은 제식 소총으로 쳐다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5.56mm탄을 사용하는 AR-15는 당연히 대인 저지력이 떨어진다고 판단했다.
미 육군 제식소총으로 7.62mm탄을 사용하는 M-14를 채용했다. 강력한 대인 저지력을 가졌다고 판단한 M-14는 무겁고 구식이었으나 보수적이고 고정관념을 벗어나지 못한 장성들에게는 여전히 신비롭고 자신들을 지켜줄 수 있는 존재로 여겼다.
완벽에 가까운 칼리시니코프의 AK-47을 맞닥드린 미군 장성들은 자신들의 판단이 오류였음을 뒤늦게 깨닫게 되었고 새로운 제식 소총을 찾아 나선다. 쳐다보지도 않았던 아말라이트사의 AR-15가 당장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존재였고 급하게 제식 소총으로 채택된다.
무겁고 둔탁한 M-14로 베트남 정글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던 미군에게는 희소식이었고 칭송이 뒤따르기 시작한다. '검은총' 으로 불리는 플라스틱 가득한 새로운 제식 소총은 반응이 좋았고 정글에서 사용하기 적합하다는 후한 평가가 이어졌다.
미국을 떠받드는 우방들에게 보급되었고 오랜 시간 미 육군과 대부분의 미군에게 제식소총으로 인식되었다. 표면적으로 대단한 총기로 칭송이 자자했으나 AR-15는 완벽이라는 평가를 받기에 부족한 측면이 많았고 미 육군은 기회가 될 때마다 제식 소총 교체를 언급했다.
유격 없이 설계된 M16은 모래와 물기, 작은 이물질에 민감하게 반응했고 고장을 유발하기도 했으며 작동불가의 상태로 빠지기도 했다. 생각해보라 적과 맞닥뜨린 상황에서 총기가 작동을 하지 않는다면 뒷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넘어 오줌을 지릴 정도의 공포에 휩싸인다.
몇 번의 경험이 미 육군의 입에 의해 전해지면서 정밀도가 떨어지는 AK-47이 상대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으며 미 육군의 자존심을 폄훼했다. 노리쇠 직동 방식을 개선하기를 원했으며 잦은 정비가 필요하지 않도록 개선하기를 원했으나 새로운 제식 사업은 실패를 반복했다.
엄청난 양으로 승부하는 AR-15의 규모의 경제성을 뛰어넘을 수 있는 총기가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당 700불이 안되는 가격으로 미 육군에 공급되는 수준을 맞추기는커녕 새로운 기술의 총기들은 2배 이상의 가격을 훌쩍 뛰어넘기 일쑤였다.
해병대와 일부 특수전을 담당하는 병사들에게 사용되기는 했으나 AR-15를 완벽하게 뛰어넘기는 어려웠다. 국방 고등연구 계획국(DARPA)은 새로운 개념인 LMR(Low Maintenance Rifle)을 시작으로 매번 새로운 사업을 등장시켰으나 획기적이지 못했다.
지칠 때도 되었 건만 여전히 미 육군은 새로운 총기를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으며 연구 계획을 늦추지 않고 있다. 미국 내 군사 관련 칼럼이나 전문가로 일컫는 부류들에게 새로운 총기는 빠지지 않는 단골 주제이며 군대 내 담당자들은 난색을 표명한다.
2차 대전에서 개발된 총기가 여전히 개념을 바꾸지 못하고 사용되고 있는 것을 상기하면 독일과 나치의 기술력은 외계인을 연상하게 만든다. 8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나도록 새로운 총기를 개선하지 못하고 있는 한계가 미국이 당면하고 있는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