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맘대로2019. 5. 15. 22:01

 

미디어에서 보이는 다방면의 갑질은 가진 자들의 특권처럼 알려졌으나 사실은 그것보다 확실히 더 실생활에 가까이 있다. 지불하는 위치에 있는 모든 이가 갑질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대부분은 자신이 지불하는 값에 서비스에 대한 기대가 포함되어 있다고 인식하고 있으며 이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기까지 한다. 지불되는 값에 서비스가 포함되어 있는 것은 맞지만 정확하게 바라보면 그럴 수도 있고 그러지 않을 수도 있다.

 

시장에서 값은 수요와 공급에 의해 정해지고 가끔은 이해할 수 없는 가격이 책정되기도 한다. 이러한 원인을 하나로 단정하기 어려우며 값에 대한 시선도 다양하다.

 

시장에서 결정되는 공정한 가격에는 당연하게 서비스 값이 포함되어 있고 서비스에 대한 기대를 충족해야 한다. 시장에서 결정되는 공정하지 않은 가격에 대해서는 당연하게 서비스 값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시장 가격보다 낮은 가격을 지불한다는 것은 스스로 서비스에 대한 기대를 포기한다는 암묵적인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서비스를 제공하는 입장에서 값을 인정 받지 못한다면 당연하게 서비스에 대한 기대를 요구하지 않는다고 판단할 것이다.

 

이러한 기조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면 서비스를 요구하는 하나의 '갑질' 이 될 수밖에 없다. 공정하지 않은 값을 지불하면서 서비스까지 요구하는 것은 완벽한 '갑질' 이다. 값에 대한 지불이 없이 이루어지는 서비스는 새로운 의미의 폭력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바라보면 소수만이 누리고 있다고 알려진 '갑질' 은 생각보다 엄청나게 확장될 수 있다. 이러한 '갑질' 은 가진 자가 보이는 '갑질' 과는 사실 차원이 확실히 다르며 '갑질' 을 당하는 입장에서의 충격도 다르다.

 

사회에서 값을 두고 벌이는 '갑질' 은 물리고 물려 메비우스의 띠처럼 끝을 찾을 수 없다. 정신적인 피폐와 자괴감이 현대인에게 늘어나고 있는 이유 중의 하나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갑질' 하던 부류가 내일은 '갑질' 을 당하고 모레는 다시 '갑질' 을 행하는 일은 자각없이 반복되고 있다. 이를 인식하고 일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대단히 피곤하고 소모적이라고 치부할 수 있으나 '갑질' 을 당한 순간에는 분개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서비스 값에 대한 '갑질' 은 정말 개같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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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원초적한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