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대전 얄타에 모인 윈스턴 처칠과 프랭클린 루즈벨트, 이오시프 스탈린은 전쟁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는 것에 대해 논의했으며 태평양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본과의 전쟁에 대해서 은밀하게 의견을 나누었다.
루즈벨트의 병세가 악화되어 사망하자 '해리 트루먼' 이 대통령이 되었고 막바지로 향하던 전쟁을 급하게 마무리하려고 했다. 소련이 동부전선에서 위세를 떨치고 있는 것에 대해 경계하면서도 태평양전쟁에 참전하지 않는 것에 대해 불만스러웠다.
러일전쟁의 후유증으로 해군력이 약화된 소련을 도와주어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되었고 해리 트루먼은 소련에 전함과 LCI(Landing Craft, Infantry)를 지원하기로 결정한다. 의회는 180척의 함선을 지원하기로 의결하였고 '윌리엄 S. 맥스웰(William Stewart Maxwell)' 함장이 표면에 나섰다.
가운데 포포프 제독
소련에서는 '보리스 D. 포포프(Boris Dmitrievich Popov)' 제독이 주관하여 "프로젝트 훌라" 를 진행하게 된다. 미 해군은 이오지마와 펠레리우에서 성공적으로 사용했던 해병대 상륙 전술을 소련 해군과 상륙병에서 이전하기로 결정하고 훈련에 들어갔다.
언어가 통하지 않아 난관이 될 것이라는 지휘관들의 예측과는 달리 미국과 소련 병사들은 전장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협력했고 캄차카반도에 모여 훈련에 여념이 없었다.
알레스카 콜드베이를 전초기지로 삼아 쿠릴반도와 한국 북부지역을 점령하고 일본 본토까지 침공하려는 계획을 세움으로 일본 항복을 유도하기로 했다. 태평양에서는 전쟁이 한창이었고 '더글라스 맥아더' 와 '체스터 니미츠' 제독이 승전보를 전했다.
비밀리에 진행되었던 '프로젝트 훌라' 는 3개의 3인치 포를 장착한 타코마급 순찰 호휘함 3,500톤과 상륙정으로 구성되었고 200명의 소련 병사가 30개의 상륙 지점을 점거할 수 있도록 계획했다.
미 해군 전투함은 페트로 파블로프스크항에 입항하였고 추위로 인해 유지보수가 필요했다.
몇 주동안 유지보수와 훈련을 통해 음파탐지기와 레이더 기술을 이전했고 영어로 된 매뉴얼을 익혀나갔다.
'프로젝트 훌라' 로 인해 소련은 러일전쟁으로 잃어버린 쿠릴열도를 되찾았고 미국은 일본 본토에 '맨하탄 프로젝트' 를 실행했다. 소련의 기세가 날로 높아지면서 일본을 일부 점령하는 것이 불편해졌고 빠르게 태평양전쟁을 마쳐야 한다고 판단했다.
두 발의 버섯구름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피어오르면서 태평양전쟁을 막을 내렸고 소련은 캄차가반도 아래 지역을 차지하게 되었다. 149척에 이르는 전투함은 1955년이 되어서야 27척이 미국에 반환되었고 나머지는 반환 요구를 하지도 않았다.
전쟁 중 파손된 함정 이외의 나머지는 스크랩하거나 출처를 알 수 없게 되었다. 소련과 미국이 벌인 비밀 프로젝트로 인해 미국은 커다란 이득을 챙기지는 못했으나 소련은 쿠릴열도를 차지하면서 사할린과 캄차카반도의 영토를 확장했다.
일부에서는 해리 트루먼이 동북아시아 정세에 대해 무지했기에 벌였던 소모적인 프로젝트였다는 비판을 가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