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을 대표하는 돌격소총이 총기 장인 '유진 스토너' 가 개발한 아말라이트사 AR-15계열 M16이라면 동구권 대표는 "AK-47" 이다. 두 돌격소총은 2차대전 독일이 개발한 StG-44를 기반으로 개발되었으며 독일 기술진이 개입되었다는 풍문이 있다.
미하일 칼라시니코프가 개발한 AK-47은 7.62×39mm 탄을 사용하여 AR-15에서 사용하는 5.56×45mm 탄에 비해 대인 저지력이 우수하다.
미 육군은 AK-47을 의식하여 아말라이트사가 제시한 M16을 제식소총으로 채택하지 않고 M14를 선택했다.
AK-47은 내구성과 신뢰성에서 뛰어난 능력을 발휘했고 다양한 기후에서도 격발이 가능할 정도였으며 라이센스가 필요하지도 않았다. 정식 수입되지 않은 총기가 나돌기 시작하면서 AK-47은 민간에게 보급되기 시작했고 가격이 정해지지도 않았다.
중화기를 장착한 정규군에 비해 열악한 게릴라와 반군에게 쉽게 전파되면서 AK-47은 비공식 1억 정에 가까운 생산량을 자랑했다. 중동에서 벌어지는 국지전에 사용되는 것은 물론, 아프리카에 보급되면서 게릴라와 반군의 절대적인 신뢰를 얻게 된다.
100불 정도 가격에 거래되는 경우도 있으며 부품이 간단하고 분해조립이 쉬워 간단한 설명만으로도 운용이 가능하며 주요 부품 4가지 정도만 고장 나지 않으면 격발이 가능하다. 100불이라는 가격에 구입할 수 있는 돌격소총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RPG-7, 도요타 픽업트럭과 함께 게릴라의 대명사가 되면서 AK-47에 대한 명성은 전설이 되어 갔다.
중동과 3국에서 벌어지는 대부분의 전투에 등장하면서 가장 넓은 저변을 가지고 있는 돌격소총으로 알려져 있으나 이면에는 어두운 면모가 있다.
1970년대 이후로 독립한 아프리카 일부 국가는 쿠데타를 거치거나 일부 세력이 정권을 장악하면서 내전에 돌입했고 국가는 피폐해지기 시작했다. 정부군과 반군 사이에서 혼란을 겪고 있는 와중에 피를 흘린 것은 국민들이었고 반군은 세력을 확장하기 위해 강제로 징집했다.
징집된 일부 중에서는 소년병이 존재했고 소년병은 이유도 모른 채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학살을 일삼았다.
저가에 공급된 AK-47은 소년병들이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간단했고 주기적으로 정비를 하지 않아도 작동할 수 있었으며 라이센스가 없어 통제가 어려웠다.
10살을 갓 넘긴 소년병이 AK-47로 무분별하게 주민을 학살하는 장면이 내전 동안 아프리카에서 활동하는 종군기자를 통해 전해지면서 총기를 통제하지 못한 러시아로 화살이 향했다. 러시아 정부는 총기 보급에 대해 부정했고 통제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도 변명을 늘어놓았다.
미하일 칼라시니코프에게까지 비난의 화살이 날아들자 칼라시니코프는 그저 국가를 위해 총기를 개발한 것이라고 설명했으나 사망하기 전까지 비난을 피할 수 없었다. 내전이 벌어지고 있는 아프리카에서는 여전히 반군들의 총기로 AK-47이 운용되고 있다.
희대의 명작이라고 불리며 서방과 동구권을 통털어 최고의 돌격소총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반면, 소년병을 양산하고 학살과 테러, 게릴라의 동반자라는 오명을 동시에 갖고 있어 AK-47을 최고의 돌격소총으로 불러주기에 부담스러운 면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