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대전 이후 동구권의 대표주자 소련과 서방의 대표 미국은 냉전에 돌입했고 서로가 가진 영역을 확장하고 방어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소련은 동구권을 바탕으로 중동에 세력을 확보하기를 원했으며 이스라엘이 독립하는 데 후방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이오시프 스탈린의 뒤를 이은 니키타 후르시초프는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를 쏘아올렸고 'R-7 세묘르카' ICBM(Inter Continental Ballistic Missile, 대륙간 탄도미사일) 이 본격 가동되면서 미국을 어지럽게 했고 소련에 대한 경계가 높아졌다.
예상과 달리 후르시초프는 서기장으로서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스탈린을 추종하던 이전의 노선을 탈피하고 반스탈린주의에 압장서면서 미국과 교류를 시작했다. 미소 냉전시대를 마감할 듯한 분위기가 감돌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인도차이나에서 갈등하던 베트남이 본격적이 전쟁에 돌입하면서 다시 격돌한 소련과 미국은 후방에서 지원하면서 서로의 세력을 견제했고 미국이 패전에 가까운 결정을 하면서 굴욕을 겪게 된다. 베트남전 이후 반전 분위기가 상승하면서 군비 경쟁에서 한 발 물러선 미국은 주춤했다.
베트남전의 치욕이 정리되기 전 소련은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면서 새로운 갈등이 촉발되었고 미국은 전면에 나설 수 없어 골머리를 앓았다. 아프가니스탄전으로 소련의 세력이 확장되기를 우려했던 미국은 정보 수집을 위해 캄차카 반도에 자주 정찰기를 보냈다.
정보를 캐내려는 미국과 방어하려는 미국의 긴장 사이에서 대통령에 취임한 '도널드 레이건' 은 군비를 확장해야 한다는 정책을 주장했다. 여론은 레이건의 편이 아니었고 수세에 몰린 레이건 정부는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답답한 행보를 지속하다가 의외의 사건이 발생한다.
뉴욕 존 F. 캐네디 공항을 출발해서 알래스카 앵커리지를 경유해 한국으로 향하는 'KAL 007편' 이 소련 영공을 침범하였고 소련 전투기 수호이 Su-15에 의해 피격되어 승무원과 탑승객 269명 전원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승객 중 62명은 미국 시민이었다.
62명 중에는 미국 상원의원 '래리 맥도널드' 가 탑승했고 미국은 격추 사실을 부인하는 소련을 맹공격하며 '악의 제국' 이라고 비난했다. 출격했던 소련 조종사 '겐나디 오시포비치' 는 KAL 007편이 민항기인 것을 인지했으나 정찰 임무에 나선 위장이라고 판단했다.
미국은 군비 경쟁이 심화되면서 보잉 707을 기반으로 한 RC-135 정찰기로 소련 상공을 자주 침범했으며 소련은 미국 정찰기에 대해 강도 높은 비난을 했다.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민항기이기는 했으나 소련 영공을 침범했고 경고에도 응답하지 않아 정찰기로 오판했다.
민항기를 전투기가 격추한 사실이 세계인에게 알려지자 한국은 물론, 세계 각국은 소련을 비난하는 성명이 잇달아 발표했고 부인으로 일관하는 소련에게 미국은 교신 내용을 공개하며 압박했다. 어쩔 수 없이 사실을 인정하게 되면서 소련은 미국이 원하는 대로 지구상의 최악이 되었다.
식었던 여론은 도널드 레이건에게 돌아갔고 군비를 확장하겠다는 선언이 즉각 실행되면서 '우주전쟁' 에 대한 프로젝트가 시작된다. 심화되던 냉전이 화해 분위기로 향했으나 '레오니트 브레즈네프' 서기장과 레이건 대통령은 일촉즉발의 위기로 몰아갔다.
군비 확장 분위기로 향하면서 냉전은 가속되었고 일부에서는 3차대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소련에 맞서 핵무기를 개발한 파키스탄을 인정한 미국은 우회하여 반군을 지원하면서 세계는 다시 심각한 냉전으로 접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