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2018. 6. 24. 19:01


멕시코와 치뤄진 두 번째 러시아 월드컵 조별 리그는 아쉽게도 두 골을 내주고 한 골을 획득하면서 석패를 했습니다. 스웨덴에 이어 두 번째 경기까지 패하면서 16강을 바라던 많은 바램에서 멀어지고 있습니다.


3개 공중파 중계방송은 모두 아쉬움을 드러냈고 마지막 남은 독일전을 위해 선수들에게 격려의 메시지를 보내자고 입을 모았습니다. 중계방송을 중계한 해설자들은 2002년 한일 월드컵을 빛냈던 영웅들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국가대표였습니다.





한국 축구의 대들보로 대표되는 선수인 박지성은 대외 활동을 자제하는 모습을 보였다가 해설위원을 선택했습니다. 무릎 부상으로 일찍 은퇴를 선언한 박지성은 지도자의 길을 택할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차범근 해설위원의 뒤를 이어갔습니다.


박지성 이외에도 앞서 은퇴한 이영표와 안정환도 해설위원으로 자리를 잡았고 지도자의 길을 선택하지는 않았습니다. 우리나라 국가대표로 이름을 올렸던 선수들은 지도자보다는 미디어를 통해 해설위원으로 데뷔하거나 의외의 행보를 보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스포츠계는 협회라는 거대한 힘이 대부분을 장악하고 있어 축구선수가 은퇴한 뒤 관련된 사업이나 지도자의 길을 걷기 위해서는 현실과 타협을 해야 합니다. 협회와 친밀해진다는 것은 기존의 것들을 답습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박지성의 경우 프리미어리그에 입성하여 맨체스터유나이티드에서 7년간 활약하며 역사를 만들었지만 2002년 한일 월드컵 이전의 존재감은 전무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박지성을 발굴한 허정무 감독의 예지와 능력을 우선하는 거스 히딩크가 만들어 낸 작품입니다.





2002년 월드컵이 치뤄지기 전 스쿼드에서 박지성을 제외해야 한다고 언론에서 엄청나게 떠들었고 대중들은 박지성을 비난했습니다. 월드컵에 앞서 치뤄진 잉글랜드와 프랑스 평가전에서 연속으로 골을 기록하며 자신의 가치를 입증했고 히딩크 주장에 힘이 실리게 되었습니다.


한국 축구에는 빠지면 안되는 선수들이 존재했고 스쿼드는 축구협회의 몫이었지만 히딩크는 이를 거부했고 좋은 성적을 거두게 됩니다. 이탈리아전에서 3명의 수비수를 황선홍, 차두리, 이천수를 투입하는 독창적인 전술을 펼치며 역전에 성공했습니다.





2002년 월드컵은 박지성에게는 인생에서 가장 큰 전환점이었고 외국으로 건너가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발판이었습니다. 성장한 박지성은 특유의 근성과 활동력으로 축구팬을 즐겁게 만들어 주었고 레전드로 이름을 올리며 은퇴를 했습니다.


은퇴 이후 박지성은 축구협회와 관련된 사업에서 거리를 두고 있었으며 'JS 파운데이션' 에서 자선 사업을 벌일 때도 국내보다는 태국이나 베트남을 선택했습니다. 축구협회에서 행정가로 직책을 맡고 있으나 박지성이 가진 영향력은 미미합니다. (감독 체질이 아니라고 밝히기도 했다.)





전설로 독일에서 한국으로 돌아온 차범근이 감독으로 나섰다가 미국 월드컵에서 엄청난 비난과 함께 지도자의 길을 포기한 것을 박지성의 아버지 박성종씨는 두눈으로 확인했습니다. 개인이 넘을 수 없는 장벽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은퇴한 선수들은 협회와 타협하지 않습니다.


박지성은 멕시코전에서 한국 축구가 발전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 대해 우회적으로 비판했고 스스로가 축구협회에 영향력에서 벗어나 있음을 알렸습니다. 말로 변화와 혁신을 앞세우고 있는 협회와 관계하지 않고 싶은 박지성과 2002년 대표들이 선택한 지점이 해설위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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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원초적한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