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터리2018. 6. 18. 10:00


현대전은 첨단화와 현대화를 지향하면서 장병 숫자보다는 발전된 장비를 구축하는 것이 군사력의 척도가 되고 있습니다. 군사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많은 비용을 소모되었지만 발전된 장비로 전투력이 판가름 나면서 더 많은 경제력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근대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발전된 장비보다는 군사력의 기준은 병사 숫자입니다. 더 많은 숫자의 병사를 누가 동원할 수 있는가에 따라 전장의 승리가 판가름되었고 새로운 장병을 모집하는 데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2차대전 일본군이 태평양 전쟁을 벌이면서 주변국의 민간인을 병사로 모집하면서 최대 750만 명에 이르는 병사를 보유했습니다. 중국과 인도차이나, 태평양 일대에서 전쟁을 벌였기에 대규모 병사가 필요했으며 엄청난 군비를 감당해야 했습니다.


인류 역사에서 전쟁을 빼고는 이야기를 할 수 없을 정도로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국가에 속한 민중은 전쟁에 대비해야 했습니다. 근세까지 보유하고 있는 군대는 대부분 모병제였기 때문에 군대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많은 비용이 지속적으로 필요했습니다.





지방의 호족들은 얼마나 많은 병사를 보유하고 있는가에 따라 세력의 크기를 결정하였고 대규모 전쟁이 벌어지게 되면 민중을 소집했습니다. 국방의 의무를 가진 대중은 국가의 부름에 응할 수밖에 없었으며 전쟁터로 향해야 했습니다.


대부분의 군대는 군사교육을 마친 군대라고 보기 어려웠으며 전투력은 병사 숫자에 판가름되었습니다. 군사 훈련을 받은 직업군인이 지휘를 맡기는 했지만, 전장에서 실제로 전쟁을 수행하는 것은 교육받지 않은 농민이었습니다.





100만에 이르는 군대를 보유하는 것은 전장에서 항상 승리할 수 있는 요건이었고 상대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습니다. 광활한 대륙을 차지했던 중국은 한반도 원정을 떠날 때마다 100만 대군을 외쳤지만, 실제 100만 대군이 움직였다는 기록은 전무합니다.


전투 병력 100만은 유럽까지 전세계를 제패한 몽골제국 전체 인구였고 실제 100만이 전투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3배에 달하는 지원군이 필요합니다. 100만 대군이라고 알려진 대부분은 지원군까지 포함한 숫자가 대부분이고 전투 인원은 30만 정도입니다.





몽골이 유럽으로 원정을 떠날 때도 불과 몇만의 군사였고 제국으로 유럽까지 영토를 확장할 수 있었던 것도 병사 숫자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말을 타고 펼치는 전격전에 대부분이 쉽게 점령되었고 하루 진격 속도는 당시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1일 130km 수준이었습니다.





인해전술을 펼치며 한국전쟁에 참전한 중공군의 숫자가 60만 정도로 추정되는 것으로 보아서도 100만 대군이 한꺼번에 전투에 참여한다는 것은 허구일 가능성이 큽니다. 100만이라는 숫자는 실제 전쟁을 수행하는 병력의 숫자라기보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강합니다.





100만 대군이 전쟁터에 나설 수 있는 것은 정치적인 안정을 가져야 하며 경제적인 부흥이 바탕이 되어야 합니다. 100만 대군이 전쟁에 나간 틈을 타 후미에서 반란을 일으킬 수 있는 위험을 가지고 있어 군대를 하나로 통합하기 위해서는 정치적 기반이 있어야 합니다.





지원군까지 300만에 이르는 병력이 먹고 입고 잠자는 데 사용되는 비용을 모두 감당하려면 단단한 국가 재정이 있어야 하며 전쟁 이후 피폐해진 대중을 먹여 살릴 수 있어야 합니다. 대규모 전쟁 이후에 왕조가 세퇴하여 정권이 바뀌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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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원초적한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