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공군이 탄생하기 전 육군항공대 시절부터 미 국방성과 지휘관들은 폭격기 우선주의에 빠져있었습니다. 장거리 폭격에 대한 구상만 하던 육군항공대가 공군으로 재편되면서 전투기에 대한 필요를 요구했고 방산업체들은 요구사항에 적합한 기종들을 선보입니다.
소련의 장거리 폭격에 대비해 요격기를 우선적으로 채택했던 미 공군은 다양한 전술에 필요한 전투기들에 대한 구상을 방산업체들에게 전달합니다. 세분화된 임무에 맞는 전투기들을 선보였지만 전투기와 공격기의 역할까지 담당할 수 있는 멀티롤 기종이 필요했습니다.
여객기를 주력으로 생산하며 방산사업에 관심을 둔 '맥도넬 더글라스' 도 그 중에 하나였습니다. 쌍발엔진을 가진 장거리 전천후 전투폭격기에 대한 요구가 있었다는 것을 의식하고 연구하던 맥도넬 더글라스는 함재기에 어울리는 전투기를 개발하여 거꾸로 해군에게 제의했습니다.
공군이나 해군에서 필요에 의해 시제기 개발을 의뢰하는 방식이 일반적이었지만 맥도넬 더글라스는 미 해군에 어울리는 전투기라고 확신했습니다.
쌍발엔진을 가진 우수한 폭장량의 새로운 전투기는 해군의 요구와 맞아떨어졌고 함대방공능력까지 추가하여 다목적 전투기로 탄생합니다.
전천후 다목적 제트 전투기 "F-4 팬텀2..."
해군에 채택된 팬텀은 "로버트 맥나마라" 가 존 F. 케네디 정부 국방장관으로 취임하면서 보급에 급물살을 타게 됩니다. 로버트 맥나마라는 군의 무기를 통합하는 것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공군과 해군 , 해병대가 전투기를 공유할 것은 은근히 압박했습니다.
공군과 해군은 서로의 필요에 의해 별도의 스펙을 원했지만 맥나마라는 막무가내식으로 전투기를 통일했고 F-4 팬텀2는 공군에 채택됩니다. 해군과 다르게 제식 명칭을 사용하기를 원했던 미 공군은 "F-110 스펙터" 로 명명했지만 맥나마라는 이조차도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미 공군은 압박에 의해 채택한 F-4 팬텀2가 별로일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전자장비를 추가한 전력은 절대적이었습니다. 당대 최고의 전투기로 불리우기에 부족함이 없었고 공대공은 물론, 공대지 폭격 임무와 적 방공망 제압, 정찰 임무까지 수행할 수 있었습니다.
GE J79-GE-17 터보제트엔진은 마하 2.27의 최대속도를 가지고 있었으며 M61 20mm 벌칸 기관포를 기본으로 4개의 무장 하드포트에는 미군이 보유하고 있는 대부분의 공대공 미사일과 공대지 미사일, 무유도 폭탄과 핵탄두 장착 AIM-8 팔콘 미사일까지 운용이 가능했습니다.
베트남전에 참전하면서 부족했던 미 공군의 실력을 바짝 올려놓으며 전세계에 명성을 떨쳤고 스스로의 가치를 입증하여 서방과 3국에 엄청나게 팔려나가게 됩니다. 독일을 시작으로 일본, 이란, 이집트, 이스라엘, 대한민국, 그리스, 터키까지 도입 요구가 쇄도합니다.
F-14 톰캣이 등장하기 전까지 대부분의 미군 전투기는 "F-4 팬텀2" 가 자리를 차지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제트 전투기로서 가장 많은 숫자인 5,195기가 제작되었고 다양한 바리에이션이 등장하면서 개량을 거치게 됩니다. (맥도넬 더글라스 대박났네...!!)
다소 과격한 엔진소음으로 위치가 쉽게 노출되기는 하지만 여전히 현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기종이기도 합니다. 퇴역을 예고하고 있기는 하지만 현역으로 사용하여도 가격 대비 성능이 부족한 수준은 아닙니다. 한국은 일본보다 먼저 F-4를 도입하면서 공군력을 급격하게 상승시켰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