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세로부터 아시아를 지켜내고 그 중심에 일본이 있어야 한다는 대동아공영권을 주장한 일본은 주변국들을 차례대로 침공하면서 전쟁을 시작했습니다. 유럽에서 팽배해진 전체주의가 일본에게 전해지면서 2차대전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된 것입니다.
재해권을 장악하고 태평양의 헤게모니를 가져가기 위해서 일본은 엄청난 규모의 해군을 편성하였고 런던 군축조약에서 맺은 배수량 제한을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거함거포가 되기 위해서는 강력하고 배수량이 높은 전함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런던 군축조약 뿐 아니라 거포의 제한을 둔 워싱턴 군축조약까지 벗어난 일본은 만재 배수량 7만톤의 야마토급 전함을 건조하게 됩니다. 18인치에 달하는 엄청난 주포를 장착하기 위해서 전함을 설계하다 보니 배수량이 비정상인 거함이 탄생한 것입니다.
독일 비스마르크와 미국 아이오와급 전함, 영국 어드미럴급 순양전함 후드와 어깨를 겨눌 수 있는 거함으로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습니다. 엄청난 화력과 크기를 가지고 있는 야마토급 전함은 2번함 무사시와 3번함 시나노까지 건조되었고 후속함은 자금 압박을 받으면서 건조를 포기합니다.
야마토와 무사시는 전장에서 제대로 활약을 하지 못하면서 '야마토 호텔', '무사시 료칸' 으로 불리웠습니다. 엄청난 크기로 높은 순항속도를 가질 수 없었고 원거리에서도 적함의 표적이 될 수 있다는 의견이 제기되면서 전면전에 나서지 않았습니다.
대당 1억 5천만 엔(현 기준 10조 원) 에 달하는 자금을 쏟아부은 거함은 전장에서 그다지 쓸모가 없었습니다. 선체의 45% 정도를 건조하던 '3번함 시나노' 는 미드웨이 해전에서 대파되어 수장된 주력 항공모함 아카키 ,카가, 소류, 히류를 대신해야 했습니다.
순양전함을 항공모함으로 개조하던 이전의 흐름에 따라 항공모함으로 탈바꿈을 하였고 엄청난 두께의 균질압연 강갑을 두른 시나노가 꺼져가는 일본 해군의 등불이 될 것을 기대했습니다 . 당대로서는 세계 최고의 항공모함이 일본의 품에 안기게 된 것입니다.
660mm 경사 장갑을 가진 최고의 항공모함이었지만 느려터진 속도와 엄청난 연비, 불안정한 레이더 장치, 핸드메이드로 만들어 부족한 부품들이 문제가 되면서 마지막 공정을 위해 구레항으로 향하게 되었고 미 해군 빌라오급 잠수함 USS 아처피시에게 발각이 됩니다.
어뢰 4발을 맞고도 끄덕 없이 항해하던 시나노는 전속력을 내기 위해 속도를 올렸고 해수가 격벽 안으로 침투했습니다. 완전하지 않은 격벽이 무너지면서 8시간만에 침몰하였고 "세계 최고의 항공모함" 타이틀을 가지려던 일본 해군의 꿈이 사라졌습니다.
방수해치에 난 2cm의 빈틈이 7만 톤급의 항공모함을 수장시켰고 전세 회복을 노리던 일본 해군은 커다란 충격에 빠지게 됩니다. (부실한 건조도 문제이지만 적함이 주위에 널렸는데 제대로 된 호휘함도 없이 이동을 한 것이 가장 큰 패착...)
시부야 해전에서 침몰한 2번함 무사시에 이어 3번함 시나노가 침몰했고 오키나와로 상륙하는 미군들을 막아내기 위해 출동한 야마토 전함은 장렬한 최후를 맞이하면서 수장이 되었습니다. 최고의 전함과 항공모함을 꿈꾸던 3척의 야마토급은 태평양 깊은 바다에 잠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