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터리2017. 5. 20. 07:00


미드웨이 해전에서 승기를 잡은 미국은 일본 본토를 향해 진군하였고 두가지 갈림길에 봉착하게 됩니다. 태평양 전쟁의 양대산맥 육군 사령관 더글라스 맥아더와 해군 제독 체스터 니미츠의 의견이 엇갈리고 있었고 전술에 대한 견해가 팽팽했습니다.





필리핀을 점령하고 오키나와를 거쳐 일본 본토로 향하자는 맥아더와 타이완을 점령한 뒤 오키나와를 거쳐 일본으로 향해야 한다는 견해 차이는 프랭클린 D. 루즈벨트 대통령이 직접 진주만으로 날아와 선택을 하기 전까지 결론이 나지 않았습니다.


필리핀에 일본군을 남겨두고 나서게 되면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맥아더 장군의 타당함이 선택되어 미군은 필리핀으로 향하게 됩니다. 양대산맥의 두 갈래길에서도 합의되는 점이 있었으니...





남태평양 팔라우 제도의 펠레리우 섬입니다.





일본군은 펠레리우 섬에 10,000여 명의 주둔군으로 방어태세를 가지고 있었고 항공기의 기착지인 활주로가 완벽하게 건설되어 있었습니다. 전략적인 요충지로 대두되면서 미군은 필리핀을 향하는 교두보로 펠렐리우 섬을 지명했고 이오지마와 오키타와에 못지 않은 전장이 됩니다.


10,000여 명의 일본군은 옥새를 각오하고 미군의 상륙을 막았으며 미 해병 1사단은 펠렐리우 섬을 장악하기 위해 혈전을 벌였습니다. 일본군 10,000여 명은 거의 전사하였고 28,000명이 참가한 미군도 1,800명 전사에 8,000여 명이 실종되고 부상당하는 피해를 입었습니다.





남태평양에서 벌어진 치열한 전투 중에 하나였지만 필리핀을 생각보다 미군이 쉽게 점령하면서 가치를 상실하게 됩니다. 이오지마와 오키나와 전투보다도 치열했지만 전략적인 가치가 상실되면서 태평양 전쟁 내내 뒷전으로 밀려나 있었고 전쟁이 끝나면서 평온한 섬나라로 돌아갔습니다.


세월이 훌쩍 흘러 전쟁의 상처가 옅어지고 있던 어느 날 펠렐리우 섬에는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주민들이 힘겹게 일군 농작물이 종종 없어지는 일이 발생하였고 빈도가 잦아지고 사라지는 농작물의 양도 늘어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섬 주위에 살고 있는 멧돼지의 짓으로 추측한 주민들은 대규모 소탕전에 나섰고 흔적을 찾아 섬의 깊은 곳에 위치한 동굴에 집결하게 됩니다. 농작물을 훼손한 멧돼지를 한 쪽으로 몰아넣고 포획을 위해 동굴 안으로 들어서던 앞 선 주민은 소스라치게 놀라게 됩니다.


동굴 안에는 사람이 있었고 농작물을 담아두었던 포대를 옷으로 만들어 입고 있었습니다. 말이 통하지 않던 서로는 한동안 의사소통을 하지 못하다가 우연히 던진 일본말을 알아듣게 됩니다. 일본군이 점령했을 때 일본어를 배우 주민이 있었고 대화가 가능하게 된 것입니다.





동굴 속의 의문의 남자는 징용에 끌려온 한국인이었고 "충청북도 단양 출신의 조병기" 라고 신분을 밝혔습니다. 주둔했던 일본군과 함께 미군을 피해 몸을 숨겼고 "미군에게 잡히면 코와 귀를 자르고 혀를 빼버린다" 는 일본군의 말에 속아 11년 동안 숲 속에 숨어서 홀로 삶을 영위한 것입니다.


팔라우 제도로 소식이 전해졌고 징용갔다가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 조병기 씨는 14년 만에 대한민국의 품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징용에 끌러갈 당시 아내와 어린 아들이 있었으나 아내는 조병기 씨의 사망소식에 홀로 지내다가 재가를 했고 아들과는 연줄이 닿아 다시 얼굴을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서울에 정착하여 아들과 함께 살고 있다는 소식을 마지막으로 조병기 씨의 소식은 더 이상 세간에 전해지지 않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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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원초적한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