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터리2017. 5. 18. 07:00


2차대전을 발발한 독일하면 떠올리는 것이 기갑 전력이고 지금까지도 최고의 이미지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기갑 전력의 대표로 불리우는 5호 전차 판터와 6호 전차 타이거는 2차대전이 중기부터 끝나가는 무렵에 생산되었고 전장에서 활약도 그다지 크지 않았습니다.


1차대전으로 베르사유 조약에 의거해 병력과 무기에 대한 제재를 심하게 받고 있던 독일은 타이거와 같은 우수한 전차를 생산할 수 없었습니다. 독일이 기갑 전력으로 가장 이름을 떨쳤던시기에는 3호 전차와 4호 전차가 주력이었고 승리를 거머 쥔 주역이기도 합니다.






전격전


2차대전이 발발할 당시만 하더라도 기갑 전력은 육군을 보조하는 현대의 IFV(Infatry Fighting Vehicle, 보병 전투차량)와 같은 위치에 있었습니다. 산발적으로 배치되어 육군의 진격을 돕거나 포격에 나서면서 주력군이 진격하는 것을 돕는 수준에 머물렀습니다.


독일은 기갑 전력을 주축으로 운용을 꾀했고 공군의 지원을 받으며 번개와 같이 몰아치는 전격전으로 전선의 우위를 차지하는 전술을 구사했습니다. 한꺼번에 몰려오는 독일의 공격을 제대로 방어할 수 없었던 것은 물론이고 공포의 대상이 된 이유이기도 합니다.






우수한 지휘관


독일 기갑 전력의 주축에는 프랑스 침공 "낫질 작전' 을 입안한 에리히 폰 만슈타인과 전격전의 창시자 하인츠 구데리안, 히틀러의 소방수 발터 모델, 사막의 여우 에르빈 롬멜, 중부 집단군 지휘관 귄터 클루게 등 우수한 기갑 지휘관들이 즐비했습니다.


기갑 전력에 대한 이해가 높았고 전술에 대한 창의적인 발상으로 독일군이 유럽 전장에서 전격전을 펼치는 데 많은 공헌을 하며 혁혁한 공을 세우게 됩니다. 히틀러의 지휘력이 우수했다기 보다는 지휘관들의 재능이 기갑 전력과 시너지를 발휘한 것입니다.






교신 시스템


독일 기갑 전력은 무선 교신을 통해 적의 동태를 파악하고 임기응변을 발휘해 연합군의 전력을 압도하는 데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대규모 기갑 전력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일 수 있었던 것은 서로 간의 정보가 확실하고 빠르게 교환할 수 있는 교신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독일군 전차장들은 전투의 상황을 파악하고 전체적인 대형을 구성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으며 전투가 벌어질 때마다 기교는 날로 발전하였습니다. 지휘관들이 치밀하고 획기적인 기획으로 감동을 주었다면 전차원들은 전장에 따라 변형할 수 있는 유연한 사고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기갑 에이스


독일 기갑 전력에는 연합군 전차 10대 1로 겨눌 수 있는 뛰어난 전차장들이 있었습니다. 무선 교신 시스템을 활용하는 것에 능했고 지휘관들이 원하는 바를 제대로 이해하고 응용하는 것에 주저함이 없었으며 전장에서 승리를 가져오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습니다.


쿠르트 크니스펠, 요하네스 뵐터, 에른스트 바크만, 오토 카리우스, 미하일 비트만과 같은 에이스들은 타이거 전차를 만나면서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게 됩니다. 이들과 맞선 동부전선 붉은 군대와 노르망디의 연합군은 독일 기갑 전력의 위엄을 맞볼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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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원초적한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