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터리2017. 4. 7. 07:00


1차대전 서부전선은 독일군과 연합군의 참호전으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참호 안에 갖혀 꼼짝할 수 없었던 병사들은 비와 추위에 떨었고 동료들의 시신으로 넘쳐났습니다. 일부는 참호족으로 후송되기도 했으며 일부는 정신적인 후유증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공격과 수비의 기나긴 무한반복으로 사상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고 가장 참혹한 전쟁으로 후대에 이름을 남기게 됩니다. 2차대전이 무기의 획기적인 발전을 나타낸 전쟁이었다고 하면 1차대전은 인간성을 상실하게 만든 참혹함만이 기억되고 있습니다.





1차대전에서 패한 독일은 베르사유 조약에 의거하여 무기와 병력의 제한을 받았고 전쟁 배상금까지 물어내며 경제적인 타격을 입었습니다. 대단히 불만을 가질 수 있는 상황이지만 대부분의 독일인은 침묵했고 억울함을 호소하며 대중들에게 관심을 모은 청년은 시대의 중심에 서게 됩니다.





나치당을 창설하고 대대적인 지지를 받으며 총통의 자리에 올라선 아돌프 히틀러는 1차대전에서 치렀던 참혹한 전투를 벗어나기 위한 방법을 찾아나서게 됩니다. 참호를 벗어나 전투를 치를 수 있는 전차의 운용과 총기의 개발로 2차대전의 양상은 확실히 달라지게 됩니다.


기갑전력을 주축으로 번개와 같이 벌이는 전격전은 독일이 유럽을 제패하는 데 절대적인 공헌을 했고 장병들의 우수한 장비는 오랜 시간 총기를 만들어 오던 한 명의 장인에 의해 개발이 되고 전선에 보급되어 전력에 상당한 보탬이 되었으며 현대 돌격소총과 기관단총의 시초가 됩니다.





휴고 슈마이저(Hugo Schmeisser)...


그가 개발한 최초의 돌격소총 STG 44와 기관단총 MP 18은 전쟁의 양상을 완전하게 바꾸어 놓았고 독일이 유럽의 대부분을 압도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우게 됩니다. 사거리가 짧아 백병전에 가까운 참호전을 치르던 병사들은 원거리 전투가 가능해졌고 살상 능력도 높아졌습니다.





무기가 발전하면서 참호전은 전장에서 사라졌고 참혹한 상황들에서 벗어나기는 했지만 전투반경이 넓어지고 치열해졌습니다. 독일군의 상징으로 불리우는 MP 40이 슈마이저로 불리우기도 했지만 MP 40은 하인리히 폴머(Heinrich Vollmer)에 의해 개발되었습니다.


권총탄을 사용하는 MP 40의 막대기 탄창이 휴고 슈마이저가 특허를 냈기 때문에 슈마이저 MP로 불리우게 된 것이 와전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차대전 초기부터 MP 40은 스타워즈에 나오는 미래 군인들의 모습을 한 독일군 상징이 되었으며 MP 18이 시초가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STG 44는 현대 돌격소총이 가지고 있는 대부분의 특성를 갖추고 있었으며 당시로서는 최고의 소총이라고 평가되었습니다. 돌격소총의 양대산맥인 서방의 M16과 러시아 AK 47은 STG 44의 기본 개념을 흉내낸 아류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M16은 아말라이트사의 총기 장인 유진 스토너(Eugene Morrison Stoner)에 의해 개발되었지만 AK 47은 알려진 미하일 칼라시니코프보다는 휴고 슈마이저가 직접적인 관여를 했다는 것이 숨겨진 의견입니다. 돌격소총을 개발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 공은 칼라시니코프에게 있지만 완성을 만들어 낸 것은 휴고 슈마이저입니다.





독일이 패망하면서 소련이 점령한 지역에 휴고 슈마이저가 고향인 튀링겐이 속했고 7년 동안 돌격소총 개발을 위해 미하일 칼라시니코프 밑에서 협력을 강요받게 됩니다. MG 42 개발자 베르너 그루너까지 가세하면서 최고의 돌격소총 AK 47이 탄생한 것입니다.


AK 47은 내구성과 확장성, 신뢰성이 우수한 총기로 발명된 이후 줄곧 사용되어 왔으며 게릴라의 상징물로 인식되고 있으며 라이센스 없이도 제작이 가능하며 1시간만 교육을 받으면 누구나 총기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최고의 돌격소총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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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원초적한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