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터리2017. 4. 4. 07:00


2차대전을 일으킨 장본인 아돌프 히틀러는 우수한 참모들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전쟁에서 승리가 이어지면서 자신의 능력으로 착각하는 커다란 우를 범하게 되었고 독단적인 결정이 늘어나면서 우세한 전장에서 물러나면서 몰락의 길을 걷게 됩니다.


다수의 전장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육군의 뛰어난 장성들을 제대로 평가하지 않으면서 주변에서 권력을 향유한 일부 세력에게 눈이 멀게 됩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리더가 제대로 서려면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는 올바른 마음가짐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인츠 구데리안(Heinz Wilhelm Guderian)


독일은 폴란드 침공부터 기갑전력을 앞세워 전격전이라는 전술로 앞도적인 승리를 거두게 됩니다. 전격전을 창시한 것은 하인츠 구데리안으로 기갑전력에 대해 깊은 조예와 철학을 가지고 있는 지휘관이었으며 2차대전 초기 연이은 승리를 안겨준 인물이기도 합니다.


권력다툼에서 밀리면서 중심에서 밀려나 야전사령관으로 활약하게 됩니다.






에리히 폰 만슈타인(Erich von Manstein)


하인츠 구데리안이 창시한 전격적을 가장 잘 이해하고 전력에 즉각 적용한 지휘관으로 꼽을 수 있으며 마지노선으로 골머리를 앓던 히틀러에게 낫질작전을 입안하여 프랑스 점령에 혁혁한 공을 세우면서 차기 육군 참모총장에 거론되기도 했습니다.


프랑스 침공에서 공을 세우면서 훈장을 받기는 했지만 그의 꿈인 육군 참모총장은 되지 못합니다.






발터 모델(Otto Moritz Walter Model)


히틀러의 소방수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전쟁 말기까지 총애를 받던 지휘관으로 방어전에서 뛰어난 업적을 이루었습니다. 오롯이 전진을 외치는 일부 장성들과는 다른 방향을 제시해서 종종 시기의 대상이 되기도 했지만 강직한 지휘관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2차대전이 말기로 접어들면서 유태인 학살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스스로 명을 달리했다는 평가를 듣고 있습니다.






에르빈 롬멜(Erwin Johannes Eugen Rommel)


사막의 여우로 알려진 지휘관으로 북아프리카에서 혁혁한 공을 세우며 단숨에 국민적인 영웅으로 등극했으나 정작 히틀러는 그를 견제하고 심지어 그의 행보에 많은 제약을 주어 전장에서 물러나 고향에서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히틀러의 견제가 심해지면서 자신을 제거하려던 "발키리 작전"의 조력을 빌미로 자살을 강요하고 롬멜은 순순히 이를 받아들입니다.






게르트 폰 룬트슈테트(Karl Rudolf Gerd von Rundstedt)


2차대전 독일 육군 원수로 가장 높은 지휘를 가지고 있던 지휘관 중에 한사람으로 히틀러와 장갑을 끼고 악수할 수 있는 권력자입니다. 뿌리부터 군인집안이며 2차대전이 발발하면서 황색작전을 지휘한 공을 세웠으나 소련 침공 바르바로사 작전의 실패로 지휘관에 물러납니다.


하인츠 구데리안과 에리히 폰 만슈타인을 지원한 상관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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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원초적한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