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터리2017. 3. 12. 07:00


적도부근에 위치하고 있으며 영해를 포함하면 미국과 중국의 영토에 이르는 방대한 국가 인도네시아는 350년 동안 네덜란드의 점령하의 식민지였습니다. 지도상에 인도네시아라는 국가는 존재하지 않았고 네덜란드에 이어 일본의 지배하에 있다가 2차대전이 끝나면서 독립을 합니다.


18,000여 개의 섬, 200여 개의 언어와 민족으로 구성되어 있어 통치에 대한 부담이 컸으며 군사력을 강화시키는 것도 어려웠던 인도네시아 공화국은 2010년을 넘어서면서부터 눈부신 발전을 이룩하게 됩니다. 군사정부가 막을 내리고 민주화가 이루어지면서 강자가 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군사 인프라라는 것을 깨우친 것입니다.





국가의 경제력이 곧 국방력인 시대를 관통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인도네시아는 76%가 주력인 육군을 재편하고 해군과 공군력을 증진시켜 현대화와 첨단화에 촛점을 맞추게 됩니다. 2000년 초반 불과 2조 밖에 되지 않던 국방예산은 최근 10조를 육박하고 있습니다.


인도네시아는 독일의 MBT(Main Battle Tank, 주력 전차) 레오파르트2를 도입했고 공격용 헬리콥터 AH-64E 아파치도 도입했으며 우리나라의 장보고 잠수함까지 도입하면서 군사력을 급격하게 성장시키고 있습니다. 2015년 인도네시아는 호주를 앞서며 12위의 군사강국으로 부상하기도 했습니다.





2016년에는 14위로 주춤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중국, 말레이시아와 어업권 분쟁을 겪고 있는 남중국해 나투나 제도에 군사시설을 확충하며 5,800억 원의 추가 국방예산을 편성했습니다. 2020년이 되면 인도네시아의 군사력은 10위권을 육박할 것으로 예상되기도 합니다.


인도네시아는 아시아의 많은 나라들과 같이 미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지속하며 군사적인 결속력을 지속하던 나라 중에 한 국가였습니다. 대부분의 무기를 미국에서 수입하였고 기술력을 이전받기도 하면서 군사력 대부분의 인프라를 구축하게 되었습니다.





주력 전투기는 최신예 멀티롤 로우급인 F-16이었고 인도네시아의 대부분의 공군력은 미국에서 생산된 것들로 채워져 있었습니다. 미국은 이미 베트남을 잃었고 국제사회에서 공산화가 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기 때문에 인도네시아에게도 많은 투자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미국과 우호적인 동맹관계를 지속하던 인도네시아는 냉전시대가 종막을 고하면서 불거진 일련의 사태를 맞이하게 됩니다. 인도네시아로부터 독립을 희망했던 동티모르는 1999년 투표가 이루어졌고 인도네시아 정부가 반대에 나서며 유혈 탄압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인도네시아군이 동티모르에서 민간인을 다수 사상시키는 작전을 감행했고 미국은 이례적으로 동맹관계를 일시적으로 중단하며 금수조치를 취하게 됩니다. 미국으로부터 수입했던 공군력의 대부분인 F-16의 부품 공급이 끊어지면서 쓸모없는 무기로 전락한 것입니다.


인도네시아는 무기 수입국을 급하게 접촉하게 되었고 러시아와의 접점을 찾게 됩니다. 판로를 찾아 해메이던 수호이 개발국은 당시로서는 최신예인 SU-27 (나토명 플랭커)를 선택하게 되었고 무기의 다원화 정책을 계획하고 실천하게 됩니다.





미국을 절대적으로 의지하는 것만으로는 불안할 수 있다는 경험을 하게 된 인도네시아 정부는 단일화되었던 무기 정책을 수정하게 됩니다. 인도네시아는 러시아에게 풍부한 자원으로 SU-27의 값을 대신했고 경제가 흔들거렸던 러시아도 상당히 만족스러운 거래가 되었습니다.


동티모르사태가 잠잠해지면서 재임한 부시정부는 금수조치를 철회했지만 이후에도 인도네시아는 다원화 정책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러시아에서 수호이 SU-30MK를 추가 도입하면서 미국 전투기와 러시아 전투기를 공동 운용하는 몇 안되는 국가가 되었습니다.


군의 현대화를 이끌면서 10년을 집권했던 유도요노 대통령은 인도네시아의 군사력을 끌어올려 군사대국으로서의 입지를 다진 역사적인 리더로 기억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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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원초적한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