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터리2016. 12. 5. 07:00




숨가쁘게 진행되던 2차대전이 연합군의 승리로 급격하게 기울어지게 된 것은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성공하면서부터였습니다. 더글라스 맥아더 장군과 휘하의 연합군은 괴뢰정부인 비시 프랑스를 몰아내고 프랑스의 영토를 수복하여 서부전선을 되찾을 방법을 간구하게 됩니다.


상륙작전이 최선이었고 프랑스의 여러 해변이 대두되었으나 최종적으로 노르망디가 낙점되었습니다. 노르망디가 최적의 장소였다기 보다는 너무 나쁘지도 너무 좋지도 않았기 때문에 선정되었다는 후문...





영국의 도버해협을 사이에 두고 있는 노르망디의 지형 파악이 끝난 상황이자만 여러 곳에서 상륙작전에 실패한 경험을 가지고 있는 영국은 불안했습니다. 윈스턴 처칠이 주도한 상륙작전은 무리한 계획과 시도 덕분에 많은 병력 손실만 초래하는 결과를 만들었고 노르망디 상륙작전도 변수가 많이 존재했습니다.


프랑스를 루트로 상륙작전이 실행될 것이라는 소문은 이미 독일지휘부의 정설이 되었고 아프리카전선에서 신출귀몰한 존재가 된 '사막의 여우' 에르빈 롬멜을 노르망디의 해안부대 사령관으로 배치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롬멜의 부대는 해안방어부대가 아니었지만 여전히 강력한 전력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이전부터 독일과 영국은 치열한 정보전을 치르고 있었으며 많은 스파이를 보유하고 있기도 했습니다. 독일에서 가장 유능한 정보원은 "아라벨"이었고 그의 정보는 독일군의 전력에 많은 보탬이 되었습니다. 영국군과 연합군의 움직임을 파악하여 선제공격을 취할 수 있게 만들어주기도 했습니다.


영국에도 위대한 스파이가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가르보..."


독일의 동향을 분석하고 정보를 취득하는 데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면서 영국의 정보전에서 독일에게 밀리지 않게 하는 데 많은 공헌을 하게 됩니다. 나중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아라벨과 가르보는 동일 인물이었고 아라벨의 정보로 인해 독일의 패망이 앞당겨지게 됩니다.





독일의 아라벨과 영국의 가르보의 본명은 후안 퓨졸...


이중 스파이였던 후안 퓨졸 가르시아(Juan Pujol Garcia)는 스페인 출신었지만 영국의 정보원이 되기를 희망했습니다. 영국 정보국은 후안 퓨졸의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하였고 후안은 독일의 스파이가 되기로 결심합니다. 독일 스파이로서 능력을 발휘하여 영국 스파이가 되기를 바랬던 것입니다.





그는 정보원으로서 뛰어나지는 않았지만 지식이 많아 독일에 전달한 정보가 종종 도움이 되었고 총통 아돌프 히틀러의 두터운 신임을 받게 됩니다. 이를 알게 된 영국은 후안 퓨졸이 영국의 스파이가 될 자격이 된다고 판단했고 이중 스파이가 될 것을 제안합니다.


영국과 독일의 정보를 한 손에 쥐고 있는 이중 스파이가 탄생하였고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펼쳐지면서 히틀러는 아라벨의 정보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게 됩니다. 후안 퓨졸은 노르망디가 아닌 칼레가 상륙지라고 독일에 보고하게 되고 독일은 이를 철썩같이 믿게 됩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벌어지던 날, 칼레에는 병력이 증강되었지만 노르망디는 평온했습니다. 지휘관인 에르빈 롬멜은 집으로 귀환하여 오랜만에 식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잠자리에 들었고 연합군은 뱃길을 뚫고 노르망디에 상륙하게 됩니다.


롬멜의 부대가 예상보다 잘싸우기는 했지만 연합군의 기세에 눌리게 되었고 병력 숫자에서도 밀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상륙작전에서 실패를 경험했던 윈스턴 처칠은 독일에게 거짓 정보를 흘렸고 그 중심에는 이중 스파이 후안 퓨졸이 있었던 것입니다.


당시의 공로를 인정받아 영국은 후안 퓨졸에게 빅토리아 십자훈장을 수여했으며 이미 독일에서 훈장을 수여받은 이후였습니다. 이중 스파이이자 두 나라에서 훈장을 받은 유일한 인물이 된 것이며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숨은 공로자가 된 것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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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원초적한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