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터리2016. 11. 22. 10:31




2차대전은 무기의 혁명적인 발전을 이룬 전쟁으로 기록되었고 독일은 전차에 대한 기술과 노하우를 획득하여 여전히 최고의 자리에 올라있습니다. 연합군의 대표주자 미군은 늦은 참전에도 선전하며 승전국이 되었지만 전차 운용에 굴욕을 겪었습니다.





남북전쟁에서 전면전이라는 개념을 접목한 윌리엄 테쿰세 셔면 장군은 명망이 높은 지휘관이었고 육군의 표상이었습니다. 위대한 인물을 자국의 무기에 명명하는 전통을 가진 미국은 새로운 MBT(Main Battle Tank, 주력전차)에 이름을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37mm 주포가 대세였던 당시에 75mm 주포를 가진 강력한 중전차를 개발한 미국은 최초의 중전차에 윌리엄 테쿰세 셔먼의 이름을 기리기로 했습니다.


제식명 M4 셔먼 탱크는 30톤이 넘는 중전차로 미국에서는 최초였고 독일의 4호전차와 소련의 T-34에 필적할 우수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북아프리카에 참전한 셔먼은 에르빈 롬멜의 기갑부대와 맞서 뛰어난 전과를 남기며 이름을 알리게 되었습니다.


버나드 몽고메리라는 뛰어난 지휘관이 있었기에 가능했지만 독일 전차에 비해 셔먼의 능력이 뒤지지 않았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초기형에는 포드 GAA V-8엔진이 사용되었고 후기형에는 크라이슬러 A57 멀티팩 가솔린엔진 또는 GM 6064 디젤엔진이 사용되었습니다. 멀티팩을 디젤엔진으로 사용하는 현재와는 달리 당시의 전차는 가솔린엔진을 장착하는 것이 대세였습니다.


디젤은 소음과 진동이 심하여 적에게 발견될 가능성이 컸기 때문입니다. 75mm 주포와 브라우닝 M2, M1919 기관총을 부무장으로 가지고 있었으며 부무장에 대한 의존도가 컸습니다. 독일 육군은 전차전에 뛰어난 교본을 가지고 있었고 전술인 전격전의 핵심이 기갑전력이었습니다.


두터운 장갑을 두르고 거포를 가진 무거운 중전차롤 선호할 수 밖에 없었고 5호전차 판터와 6호전차 티거를 개발하게 됩니다. 현대 전차와 비슷한 무게인 60톤의 무게를 가진 티거전차는 셔먼의 상대가 아니었습니다.





셔먼은 51mm의 전면 장갑을 가진 중형전차였고 기동성을 우위로 보병의 선봉에서 화력을 무력화하는 용도로 사용하였습니다. 대전차전에 유용한 전차라기보다는 보병의 기동에 화력을 지원하는 전술에 맞추어져 있었기 때문에 독일의 전차와는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이동중 조준이 가능한 텔레스코프를 장착하여 명중률을 높였으며 노지와 노상에서 40km의 속도를 낼 수 있습니다. 무거운 독일의 전차들이 30km밖에 되지 않는 것을 감안하면 기동성에서 우위에 있다고 할 수 있으며 육군 장성 조지 패튼의 바램이기도 합니다.


258대의 독일 전차를 잡은 에이스 라파예드 폴의 예가 이러한 주장을 뒷바침할 수 있습니다. 53,776대라는 엄청난 생산량도 한 몫을 차지했고 미군은 물론이고 영국, 프랑스, 중국, 소련까지 주력전차고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항공기엔진을 사용하여 전폭에 비해 전고가 높아 급선회시 전복된 사례도 있지만 당시 전차로서는 뒤지지 않는 전차 중에 하나였고 장점이 많은 전차라는 것이 중론...






셔먼으로 충분히 전선에서 활약할 수 있다고 믿은 미국과 연합군에 비해 독일은 중전차 판터와 티거를 개발하고 전선에 투입했습니다. 88mm를 주포로 하는 티거전차는 셔먼보다 두 체급 위의 전차였고 대전차전의 결과는 불을 보듯이 뻔했습니다.


뒤지지 않는 능력을 가진 셔먼전차가 독일군의 밥이 된 것도 판터와 티거전차 덕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티거 공포"라고 알려진 것처럼 티거와 셔먼의 교전이 엄청나게 많은 것 같지만 실제 교전은 3번이었고 셔먼의 참패였습니다. 가장 많이 조우한 거은 판터였고 상대가 되지 않았던 것은 맞습니다.


미들급과 헤비급의 전차가 전차전을 벌였으니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으며 타이거의 전차장들은 독소전쟁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들이었습니다. 에이스 미하일 비트만의 명성은 셔먼 전차병들을 공포에 몰아넣기에 충분했습니다.


셔먼이 판터에게 발사한 포탄은 튕겨나가기 일쑤였으니 더 두터운 장갑을 두른 타이거전차는 말할 것도 없었습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 이후로 벌어진 대전차전에서 참패를 겪으며 셔먼의 주포를 교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습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교체의 요구가 있었지만 미군은 기동성을 바탕으로 독일군 전차의 측면을 공략하는 전술에만 치중했으며 이 전술은 유효하지 못했습니다.


76mm 대전차포를 장착한 영국의 셔먼 파이어플라이 정도가 독일 신형전차의 장갑을 균열시킬 수 있었으나 이것도 어디까지나 수치상의 결과일 뿐 실전에서는 상당히 다른 결과를 나타냈습니다. 고속고폭탄을 장착해야만 대응이 가능했으니 미군이 타이거에 공포를 느낄만 했습니다.


타이거보다는 판터나 야크드판터였지만 미군은 독일군의 탱크를 모두 타이거라고 불렀기에 공포가 더 확산되었습니다.(독일군은 물자부족으로 운용할 수 있는 타이거전차의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장갑이 뚫리면서 적재된 포탄이 연쇄폭발하여 '론슨라이터'라는 불명예를 안았지만 T-34나 동급의 독일 4호전차에 비해 생존력이 높았습니다. 셔먼이 타이거에게 대패하면서 소문이 와전된 것이며 본국에서는 타이거 1대를 상대하려면 셔먼 5대가 필요하다는 루머가 나돌기도 했습니다.





전고가 높아 적에게 노출될 위험은 있었지만 전차장의 시야확보에는 유리했으며 가솔린 엔진과 포탄을 적재하는 당시의 전차들의 특성상 연쇄폭발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이었습니다. 해치가 4군데나 있었던 셔먼이 오히려 생존력이 높았다는 것은 전후에 밝혀지게 됩니다.


76mm로 주포를 바꾼 영국형 셔먼 파이어플라나 전면 장갑을 140mm로 확장한 점보셔먼이 나타나면서 타이거에 대응할 수 있게 되었으나 이미 전장은 휴전에 가까워졌고 셔먼은 기를 펴지 못하고 2차대전이 마무리되었습니다.


아라쿠스전투에 판터를 상대로 대승을 거두었고 85대의 독일군 전차를 격파했으나 셔먼은 명예회복을 하지 못하는 불운을 갖게 되었습니다. 엄청나게 많이 생산된 전차이기에 다양한 바리에이션을 가지고 있으며 M4A3E8형은 "EASY8"로 불리웠고 영화 "퓨리"의 주인공으로 알려지기도 합니다.





M4A2E8형이지만 이지로 둔갑을 해서 영화에 출연을 했습니다. 태평양전장에서도 활약을 했으며 화염방사기능을 가진 "지포(Zippo)"가 가장 유명합니다. M4A3E8은 한국군에도 배치되었으며 이스라엘에서 전량 수입하여 개수를 통해 M50 수퍼셔먼과 M51 아이셔먼을 운용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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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원초적한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