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터리2016. 10. 9. 07:00




해군력은 이전이나 현재나 군사력의 척도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해상을 장악하는 나라가 곧, 세계에게 가장 강한 군사력을 가진 나라라는 공식이 통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재배수량 10만톤 이상의 니미츠급 항공모함은 군사력의 척도가 되었고 이를 소유한 미국이 최고의 강국으로 불리우고 있습니다.


거함거포주의가 팽배했던 2차대전에서 일본은 해군 군축조약을 위배하면서 대배수량의 전함을 계획하게 됩니다. 후소급, 이세급, 나가토급을 넘어선 거함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게 됩니다.





기준배수량 6만 5천톤과 만재배수량 7만톤의 야마토급 전함은 독일의 거함인 만재배수량 5만 톤급의 비스마르크를 훌쩍 넘는 거대하고 거대한... (전함이고 싶었다...!!)


승조원 2,500명이 승선할 수 있으며 3엽의 프로펠러가 4기나 달린 야마토급의 첫번째 기함은 에도시대까지 사용하던 지역 이름인 야마토노쿠니의 지명을 빌린 야마토로 정하였습니다. 최고속도 27노트(50km)와 최대 항속거리 13,334km에 달하는 기함이며 일본 해군의 상징이었습니다.


최초 계획은 8척을 건조하는 것이었지만 1번인 야마토, 2번 무사시, 전함으로 건조되다가 항공모함으로 급변경된 시나노까지 3대였으며 전함으로는 야마토와 무사시 2대가 전부입니다.





주포는 460mm 45구경장 3연장 3기가 장착되었고 부포는 155mm 60구경장 3연장 4기가 장착되었으며 127mm 40구경장 2연장 대공포 6기, 25mm 대공 기관포 8기, 13.2mm 대공 기관총 8기가 장착되었습니다.


당시 일본은 3연장 주포와 부포에 대한 기술이 전무했기 때문에 타국의 기술을 흉내내어 국산화에 성공하게 됩니다. 복잡한 수공정을 거쳐 제작되었기에 가격이 높았으며 제작기간이 길었고 겉보기와는 다르게 성능에서도 문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엄청난 거함거포였지만 실전에서는 그다지 좋은 성과을 나타내지 못하면서 야마토와 무사시는 해상 호텔로 불리우기도 했습니다. 전면 660mm, 측면 410mm, 갑판226mm의 경사장갑을 두른 괴물이었지만 부포의 장갑은 고작 25mm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수상정찰기 7대와 캐터펄트 2기의 함재기를 탑재했으며 전장 263미터, 전폭 38.9미터에 달하는 몸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야마토 호텔과 무사시 여관으로 불리울 정도로 화려한 구성은 갖추고 있었으며 승조원들이 모두 침대를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미 해군의 승조원들이 해먹을 이용해 아무데서나 잠을 자던 것과는 상당히 차별화된 구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승조보조원들은 징용된 최고의 요리사들이 탑승했고 이발사, 재봉사, 세탁공이 함께 생활했습니다.


엄청난 크기의 히타치 식품 냉장고를 비치하고 있었으며 육군보다 대체적으로 좋은 해군 식사 중에서도 최고로 꼽힐 정도였습니다. 해군사령관 야마코토 이소로쿠가 방문하여 감탄했을 정도의 수준이었으니 5성급 호텔로 불리울만 합니다.


대당 건조비용이 당시 일본 예산의 1%에 해당하는 1조 원이었고 최신 광학장비와 레이더를 설치했으며 460mm 주포는 400mm의 16인치 주포라고 미군에게 흘리는... (뻥카를 시전했다.)





독일의 구스타프 열차포나 러시아의 차르 대포, 리틀 데이비드의 말도 안되는 괴물 무기들이 즐비하기는 했지만 태평양 연합함대의 대표이자 일본 해군의 아이콘은 당연히 야마토... (가 아닌 나가토였다.)


존재만으로도 미국에게는 위협적이었으나 미드웨이 해전을 비롯한 시부얀 해전에서 별다른 성과를 나타내지 못하고 무사시가 어뢰공격에 침몰되는 굴욕을 겪게 됩니다. 사기가 오른 것은 오히려 미군쪽이었고 일본 해군의 사기는 바닥을 치게 됩니다.


부포의 장갑도 문제였지만 근처에 위치한 주포와 부포의 탄약고는 무사시의 침몰에 결정적인 연쇄 폭발의 원인이었습니다. 두터운 장갑에 비해 균질압연강판의 순도가 낮았고 특수강으로 불리기에는 높은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광학장비는 그런대로 ,쓸만했지만 레이더는 미군에 비해 턱없이 낮은 수준...


결정적으로 엄청난 크기의 기함임에도 증기터빈의 숫자가 적었고 항속거리가 짧았으며 일본 해군의 증유가 바닥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치열한 과달카날 전투에 야마토가 출전하지 못한 것도 부족한 연료 때문이라는 후문...





야마토급을 기반으로 한 최대 항공모함 시나노가 USS 아처피쉬의 어뢰 4바에 침몰되었고 호텔로 불리우던 야마토 전함도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전쟁 말기 광기 어린 일본은 자국민들의 자살공격인 카미카제를 거리낌 없이 운용했고 야마토를 '키쿠스이 작전'에 투입하기로 결정합니다.


키쿠스이는 오키나와 해변에 스스로 야마토를 침몰시켜 고정포대가 되어 본토 공격을 지연시키는 말도 안되는 작전이었으나 일본 군부와 해군에서는 당연한 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B-29와 잠수함에게 야마토의 행적이 미연에 포착되었다는 것도 무시하고 출전하여 엄청난 포화를 두들겨 맞게 됩니다.


이미 무사시를 침몰시킨 경험이 있는 미군은 강습폭격기의 어뢰공격으로 일본 영해를 벗어나기도 전에 공격하여 야마토는 장렬한 최후를 맞이 합니다. 강습폭격기 조종사 12명 사상의 미군과는 달리 야마토 3,035명과 호위함대 2수뢰전대 1,187명을 합한 4,242명이 수장되는 참사를 맞게 됩니다.


야마토 전함의 침몰을 일본의 침몰을 뜻하는 것이였으며 거함거포시대의 마지막을 뜻하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야마토 전함은 여전히 일본인들의 자부심으로 회자되고 있지만 그 위용에 비해 뛰어난 능력을 가진 전함은 아니었다는 것이 중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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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원초적한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