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터리2016. 10. 6. 07:00




해양대국 영국은 제공권의 절대적인 우위를 갖고 있는 공군과 달리 해군에서는 U보트의 공격에 속수무책이었습니다.





잠수함으로 공격받은 상선들은 수없이 침몰되었고 조선소에서는 상선들을 건조하기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물자를 실어나르는 상선들을 건조하느라 전시임에도 전함의 건조가 불가능할 정도였습니다.





히틀러의 신임을 받고 있던 해군 사령관 칼 되니츠의 예상이 적중한 것입니다. 육군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지원속에서도 되니츠의 해군은 중대한 임무를 수행하면서 영국을 괴롭히는 데 공헌을 하고 있었습니다.


영국은 전쟁에 필요한 해군력도 모자라는 판에 U보트의 기습적인 공격으로 상선들이 침몰하면서 낭패를 겪고 있었습니다. 고심하던 영국과 연합군에게 황당할 정도의 기발한 제안이 전달됩니다.





북국의 빙산을 소재로 전함을 만들 수 있다는 주장을 펴는 민간인이 있다는 소문은 군관계자들의 귀를 의심하게 했습니다. 민간인 제프리 나다니엘 조셉 파이크와 존 데이몬드 버널은 목재와 물을 젤형태로 만들어 동결시킨 신소재 파이크리트(Pykeret)를 사용해 배를 건조할 수 있다는 제안을 했습니다.





알루미늄과 철이 동이나는 상황에서 제프리 파이크의 주장은 황당하지만 실현 가능성이 있는 의견이라는 판단을 내리게 됩니다. 영국, 캐나다, 미국의 관계자들은 합동으로 프로젝트을 계획하고 대형 항공모함의 건조를 계획하고 실천하게 됩니다.





성서 하박국 1장 5절의 구절처럼 세상을 깜짝 놀랠 기대감으로 계획된 프로젝트는 하박국(Habakkuk)으로 명명되었습니다. 제프리 파이크의 오타로 인해 Habbakkuk으로 불리기도 했으며 진중함의 상징인 윈스턴 처칠 수상도 "2년에 100대"라는 언급으로 기대감을 표명했습니다.


발상의 전환이 생활화된 영국이라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하박국 프로젝트의 채택은 고개를 갸웃거리게 합니다. 영국 뿐 아니라 캐나다와 미국의 합세는 전쟁으로 인한 피로도가 상당했음을 반증하고 있습니다.


당시 거함이었던 비스마르크의 5만톤의 배수량과 일본의 야마토전함의 7만톤의 배수량을 뛰어넘는 것은 물론이고 니미츠급 항공모함의 10만톤의 20배가 넘는 220만톤의 항공모함을 제작하는 계획입니다. 자체 냉각시스템을 갖추어서 파손시 복구가 가능한 불침 항공모함입니다.


당시 U보트는 잠항시간이 길지 않아 작전을 수행하지 않을 때는 해수면에 머물렀고 항공기를 이용한 타격이 가능했습니다. 항속거리가 길지 않은 전투기를 옮길 항공모함이 절대적으로 필요했으며 대규모 항공모함을 계획하게 된 이유이기도 합니다.





150대를 육박하는 함재기를 탑재할 수 있었으며 승무원 1,600명이 생활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려는 전장이 610미터, 전폭이 90미터에 달하는 수퍼 울트라 항공모함의 계획은 물거품으로 바뀌게 됩니다.


블록상태의 파이크리트는 물에 잘 부양이 되었지만 규모가 커지면서 가라앉아 갑판과 해수면의 높이가 같아졌습니다. 해수에 오랜시간 노출도면서 변형이 일어나기 시작했고 제작에 필요한 펄프 30만톤, 섬유판 2만 5천톤, 강철 1만톤을 구할 수 있는 시간과 비용이 부족했습니다.


전쟁 말기가 되면서 독일군 암호가 간파되고 U보트에 대한 현실적인 대응방법이 나오면서 엄청난 비용과 인력이 필요한 하박국 프로젝트의 필요성이 급격히 줄었다는 것이 중론...


전쟁이라는 극한의 상황이 현실적인 판단을 어렵게 한다는 극단적인 예를 남긴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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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원초적한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