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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을 안긴 영화 '더 스트레인저'

원초적한량 2022. 12. 25. 22:36

 

 

2022년 넷플릭스 영화 '더 스트레인저'

 

 

 

 

굳이 카테고리를 나누자면 '범죄 스릴러' 정도이지만, 평은 그다지 좋지 않다.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로 깊은 생각에 잠기게 만든 영화였다.

 

할리우드판 스피드를 가진 '범죄 스릴러'에 익숙한 대중에게 평이 좋지 않은 것은 당연하다.

 

영화에서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파악하는 데 중점을 두었기에 어느 영화보다 높은 평가를 하고 싶다. 영화가 보여주는 미장센이나 배우들이 가진 연기력보다는 범죄에게 던지는 메시지가 부러웠다고 할까?

 

범죄를 바라보는 선진된 사회가 가진 사회적 합의를 볼 수 있어야 '더 스트레인저' 진가를 알 수 있다.

 

 

 

 

법이 만인에게 평등하다는 정의는 우리 사회에서 전혀 타당하지 않다는 걸 보아온 많은 사례로 알 수 있다. 교도소를 탈출해서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외친 시기가 언제인지도 기억나지도 않게 많게 세월이 흘렀으나, 한국 사회는 여전하다.

 

겉으로 보여지는 숫자에는 선진이라는 범위에 충분하지만, 사법적 뒤틀림을 볼 수 없었다. 법을 만지는 기술자들은 이전보다 더 교묘하고 잔인하게 서로가 가진 권력을 나누고 지키는 것을 서슴지 않는다.

 

범죄에 대해 이중 잦대를 가진 사회는 발전된 사회라고 할 수 없다. 그런 관점에서 대한민국은 여전히 후진국이다.

 

범죄에 대해서는 기한이 없으며 과다한 비용과 인력이 소모되더라도 단죄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영화에 보인다. 개인이 가진 불행으로 치부하고 기억에서 지워버리는 한국 사회와는 완벽하게 동떨어진 영역이다.

 

 

 

 

'더 스트레인저'에서 보여지는 치밀한 수사는 한국에서 불필요하다고 치부될 여지가 충분하다. 

 

영연방 국가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호주가 보여준 선진 사회에 대한 지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정의를 가진 사회라면 당연히 '더 스트레인저'와 같은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한다.

 

 

 

 

'더 스트레인저' 엔딩크레딧에서 완벽하게 절망에 빠진다. 선진이라는 단어에 들떴으나, 여전히 법시술자들이 벌이는 다양한 농락에 놀아나고 있다는 것이 머리를 스친다. 법기술자들은 사회정의를 앞세우지만, 사회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한 번도 노력하지 않았다.

 

직업인으로 개인이 가질 수 있는 부와 영예만을 쫒는 불쌍한 부류일 뿐이다. '더 스트레인저'와 같이 범죄에 대해 끊이지 않은 노력이 지속되는 사회가 진정한 선진이다. 뒤틀린 가발이 벗겨질 때 진정한 선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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