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터리2018. 8. 18. 07:00


결과론적이기는 하지만, 2차대전에서 하나의 커다란 전환점이 된 사건은 일본이 하와이에 위치한 진주만을 기습 공격한 것이다. 항공모함전을 주도하던 '야마모토 이소로쿠' 일본 함대 사령관의 주도하에 이뤄진 기습 공격은 미국을 2차대전에 끌어들이는 계기가 되었다.





스스로 미국의 해군력을 압도할 수 있다고 오판한 군부의 판단과 유리한 고지에서 협상을 이끌어가기 위한 제스처에 지나지 않은 공격이었다고 생각했으나 진주만 기습 공격으로 전세가 달라졌고 일본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두 발의 핵폭탄을 선사 받는다.





야마모토 이소로쿠를 위시한 해군 장성들이 입안한 기습 작전이었다고 알려졌으나 진주만 기습 공격의 모티브가 있었다.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시작된 2차대전에서 '아돌프 히틀러' 는 추축국인 이탈리아가 아프리카를 장악하고 일본이 아시아를 점령하는 것을 꿈꿨다.





이탈리아가 아프리카를 거쳐 발칸반도에 위치한 유전지대를 장악하고 소련을 지나 동북아시아까지 영토를 넓히게 되면 아메리카를 제외한 대부분이 추축국의 영역이 되는 것이다. '베니토 무솔리니' 는 지브롤터와 수에즈 운하에 해군을 증강했다.


영국과 프랑스, 이탈리아 해군이 지중해를 중심으로 대립하고 있었으나 '에리히 폰 만슈타인' 이 입안한 낫질 작전으로 프랑스가 점령되면서 영국과 이탈리아 해군만이 남겨졌다. 전함 6척, 순양함 21척, 구축함 52척, 잠수함 106척을 보유한 이탈리아 해군은 영국을 압도했다.





지브롤터에서 이탈리아 해군에게 수적 열세에 몰린 영국은 타란토에 위치한 이탈리아 해군을 공습하기로 계획한다. 'Operation judgement' 로 명명된 기습 공격은 1940년 10월 21일로 계획되었다. 계획에 앞서 주력 항공모함인 HMS 이글에 화재가 발생하면서 11월 11일로 연기되었다.





HMS 일러스트리어스에 함재된 스워드피쉬 뇌격기 21대는 구식이지만 어뢰와 폭탄을 실어나르기에 부족하지 않았다. 이탈리아는 타란토를 방어하기 위해 대공포 100여 문과 기관총 200여 정을 설치했으며 어뢰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4km에 그물망을 설치했다.





공습을 방어하기에 충분했기 때문에 이탈리아 해군은 타란토를 기습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21대의 스워드피쉬 뇌격기가 출격하였다. 야간에 도착한 뇌격기 6대에는 어뢰가 장착되었고 6대에는 폭탄이 장착되어 있었으며 유류 저장고와 전함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대공화기가 불을 뿜었으나 뇌격기를 당해내지 못했고 정박했던 전함과 순양함, 유류 저장고는 불길에 휩싸였다. 2번에 걸친 공습으로 이탈리아 전함 콘테 디 카보르, 카이오 두일리오, 리토리오가 바다 속으로 주저앉았고 순양함 2척과 700명의 병사가 사상자 명단에 올랐다.





지중해에서 영국을 압도하던 이탈리아 해군에 중대한 피해를 입히기는 했으나 이탈리아 해군력을 흔들어 놓는 것에 성공하지 못했다. 타란토 공습에 영국과 이탈리아 이외에 두 가지 시선이 있었으니 베를린 주재 일본 대사관 소속 '나이토 타케시' 중위와 타란토 작전을 참관했던 미 해군 소속 '존 오피' 중령이었다.





진주만 공습을 계획할 시기 타란토 공습에 대한 정보를 '나이토 타케시' 중위가 일본 해군에 전했으며 미 해군에게 '존 오피' 중령도 전달했다. 일본은 타란토 공습을 모티브로 진주만 기습을 계획하게 되었고 미국은 타란토의 교훈을 소홀하게 생각했다.





진주만을 방문한 '존 오피' 중령의 경험어린 조언을 흘려들은 미 해군은 하와이 방어선을 개선할 수 있는 여지를 상실했고 얕은 수심으로 어뢰 공격을 염두하지 않았다. '존 오피' 중령의 조언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미국과 일본의 앞날은 아이러니하게 완벽히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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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원초적한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