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터리2018.08.12 09:29


1945년에 들어서면서 일본은 태평양에서 전력 대부분을 상실했고 군부는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태평양 함대 사령관 '야마모토 이소로쿠' 는 신중하고 이성적인 지휘관이었으나 전사한 뒤였고 육군을 중심으로 한 군부는 결사항전을 외쳤다.





히로히토 천황은 전세가 기울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군부의 결사항전을 믿었고 1억이나 되는 일본국민을 상대해야 하는 미국은 부담스러웠다.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이 갑자기 서거하면서 대통령이 된 '해리 트루먼' 은 동북아시아 정세에 어두웠다.





미국 내 여론은 길어지는 전쟁을 빨리 끝나는 쪽이 유리하다고 형성되었고 태평양에서 우세한 전력을 유지하고 있었으나 군수 물자가 내리막을 향하고 있었다. 유럽과 태평양에서 전쟁을 치르는 것은 엄청난 인명과 비용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고 소련의 움직임이 수상했다.





독일이 동부전선에서 밀려나면서 소련의 기세가 급격하게 높아졌고 유럽 내 공산주의 체제의 확산이 우려되었다. 이오시프 스탈린을 달래면서 전후 유리한 입장을 취하기 위해 루즈벨트가 얄타에서 회담을 했고 트루먼은 포츠담에서 만나기로 약속한 상태였다.





미국의 군사 전문가들을 이미 계획이 완료된 '맨하탄 프로젝트' 를 실현하기를 희망했으나 세계 최초의 원자폭탄 사용에 대해 회의적인 시선이 있었다. 상황이 급박했으며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명분을 들어 맨하탄 프로젝트를 실행할 것을 종용하는 여론에 밀려나기 시작했다.





유럽과 태평양에서 전쟁을 치르고 있는 미국이 일본에 원자폭탄을 투하하게 되면 인종차별이라는 비난을 받게 될 것이고 50만에 달하는 사상자를 감수해야 한다. 일본 군부가 미국의 권유를 받아들일 것으로 예상했으나 극렬하게 저항했고 사태가 심각했다.





소련은 마침내 일본으로 상륙할 기미를 보였고 대한민국과 함께 남북으로 나뉘어질 수 있는 위험에 처했다. 일본의 항복으로 자연스럽게 대한민국이 광복이 되고 일본과 다른 하나의 국가가 해방되는 것에 대해 인지하지 못했으며 전쟁을 마무리할 것에만 집중했다.





핵 무기가 부도덕하며 비인간적이라는 평가가 있었으나 평화로운 시기인 2018년의 상황과 전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는 1945년의 상황은 다르다. "특별 폭탄" 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 깊은 고민을 했던 트루먼은 이놀라 게이에 '리틀 보이' 를 실었다.





8월 6일 히로시마로 향한 이놀라 게이는 하얀 버섯구름을 피어오르게 했으며 히로시마가 완전하게 사라지는 것을 본 미국도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원자폭탄의 위력을 알고 있기는 했으나 실제로 벌어진 참상은 생각하던 것 이상이었고 참혹했다.





일본의 무조건 항복을 예상했으나 일본 군부는 1억에 달하는 일본인이 모두 없어지기 전까지 항전할 뜻을 비췄고 3일 뒤 두 번째 "특별 폭탄" 은 벅스카에 실려 고쿠라로 향했으나 일기가 좋지 않아 플랜 B인 나가사키로 향했고 다시 버섯구름을 일으켰다.





맨하탄 프로젝트는 나가사키 이후에도 일본을 초토화시킬 수준까지 계획되어 있었고 일본 군부는 더 이상의 항전을 포기하게 된다. 8만이 원자폭탄으로 사망했고 70만이 방사능에 노출되었으며 일본은 한 세대 이상을 원자폭탄의 후유증으로 신음했다.





8월이 되면 일본 내부에서는 원자폭탄 투하에 대해 무의미했으며 인종차별이고 소련의 침공을 두려워한 오판이라는 목소리가 높아진다. 해리 트루먼 대통령이 오판한 것이라는 분위기를 형성하기는 하지만 주변국으로부터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다.





대동아공영권이라는 일본의 이익을 위해 주변의 많은 국가와 국민이 고통을 당했으며 태평양 전쟁에 희생된 것에 대해 여전히 참회하지 않고 있다. 해리 트루먼의 판단이 옳았는지 보다는 만행을 저지른 일본을 단죄한 것에 대해 동의하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Posted by 원초적한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