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터리2018. 7. 21. 20:29


냉전 시절 미국은 소련이 장거리 폭격기로 본토를 핵무기로 타격할 것을 두려워했고 앞서나가는 소련의 기술을 포착하기 위해 노력했다. 새로운 기술이 접목될 때마다 정보가 부족했기에 두려울 수밖에 없었고 무기 경쟁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소련은 정보를 차단하기 위해 주요 시설에 5겹의 방어벽을 설치했고 기술자와 연구원들을 외부로 유출하지 않았다.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활동이 가능했던 미국과 달리 소련은 공산주의 체제를 유지하고 있어 모든 점이 유리했고 무기 개발에서 앞선 성과를 보인다.





이오시프 스탈린이 사망하고 서기장에 오른 '니키타 후르시초프' 는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를 쏘아올렸고 로켓 개발자들을 보유하고 있던 미국은 서둘러 NASA(National Aeronautics and Space Administration, 미 항공우주국) 를 설립한다.





소련을 정찰하기 위해 고고도 정찰기 U-2가 활약했으며 방공망을 확충한 소련은 지대공 미사일로 대응했다. 초고속 정찰기 'SR-71 블랙버드' 로 전환했으나 완벽하게 충족하지 못했다. 초고속으로 날아드는 SR-71을 요격할 수 있는 요격기 출연했기 때문이다.


촘촘한 소련 방공망을 뚫어내기 위한 연구가 벌어지고 새로운 항공기의 방향을 스텔스로 정해졌다. DARPA(Defence Adbanced Research Project Agency, 방위고등연구계획국) 에서 추진하던 새로운 항공기 사업은 아이러니하게도 소련에서 흘러온 정보였다.





러시아 과학자 '표트르 우피므체프(Pyotr Ufimtsev)' 는 반사면이 일정하지 않으며 레이더에 실제와는 다르게 포착된다는 연구를 했고 록히드에서 신박한 개발을 담당하던 '스컹크웍스' 에 의해 발견된다. 


아이언볼로 RCS(Radar Cross Section, 레이더 반사면적) 을 줄이던 미국에게 희소식이었다.





록히드는 전투기를 생산한 경험이 없었기에 애초부터 새로운 전투기 사업에 참가하지 않았으나 스텔스 전투기 개발은 록히드에게 주어졌다. 시제기 '해브 블루' 가 등장하면서 미국은 내부에서 조용하게 흥분했고 RCS가 최소화되는 것을 입증했다.





소련이 구축한 레이더 방공체계를 유유히 뚫어낼 수 있는 스텔스 전투기가 개발되었고 "F-117A 나이트호크" 로 제식명명된다. 대당 400억을 훌쩍 넘기는 가격을 가진 F-117A은 실전에서도 훌륭하게 임무를 수행했고 파나마 침공에서 위력을 발휘했다.





걸프전과 이라크전, 보스니아 내전에서 활약하며 본격적인 스텔스 전투기 시대를 열게 된 장본인이다. 


F-117A 나이트호크가 코소보 내전에서 폭격 임무를 수행하고 돌아오던 중 요격되면서 최강 전투기로 불리는 'F-22 랩터' 가 뒤를 이어나가게 된다.





가시거리 내 도그파이트가 서서히 사라지고는 있었으나 F-117A 나이트호크가 등장하면서 전투기와 폭격기는 스텔스로 향했고 미국을 뒤따르는 러시아와 중국도 스텔스 전투기를 개발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게 되었다. 


5세대 전투기를 개발하고 있는 대부분의 국가는 스텔스를 지향하고 있다.





코소보 공습 중에 격추된 F-117A 나이트호크가 중국으로 흘러가지 않았다면 중국은 여전히 5세대 스텔스 전투기를 개발할 수 있는 기술을 갖추지 못했을 것이다. 러시아는 미국과 달리 플라즈마 스텔스 공법을 채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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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원초적한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