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터리2018. 7. 3. 07:00


진주만 기습 공격으로 협상 테이블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하고자 했던 일본의 속내는 완벽히 어긋났고 미국은 태평양과 유럽에 파병을 결정하면서 2차대전의 양상은 급격하게 달라지게 된다. 일본 해군 사령관 '야미모토 이소로쿠' 의 우려가 현실이 되었다.





미드웨이 해전에 일본 주력 항공모함 아카기, 카가, 소류, 히류가 모두 침몰했다. 미드웨이 해전으로 일본 해군 주력이 일부 무너졌으며 태평양 재해권은 미국으로 서서히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일본 군부는 자존심에 엄청난 스크레치를 입었고 복수의 칼날을 갈고 있었다.





전쟁이 막바지로 향하고 있던 1944년 5월까지 미국은 일본 본토를 공격할 루트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해군은 필리핀을 거쳐 오키나와를 점령한 뒤 일본 본토로 진격할 것을 주장했고 더글라스 맥아더는 대만과 중국을 거쳐 일본 본토로 진격하는 계획을 주장했다.





격차가 좁혀지지 않으면서 미국은 두 가지 루트를 모두 실행하기로 결정했고 필리핀 인근에서 일본은 마지막 결전을 계획한다.


야마모토 이소로쿠 사령관이 전사하면서 전력에 차질이 있기는 했지만 일본 해군에는 쇼카쿠, 즈이카쿠 주력 항공모함과 야마토, 무사시 전함이 건재했다.





2선에서 야마토 호텔과 무사시 료칸으로 비웃을 샀던 이전의 경험을 바탕으로 야마토와 무사시 전함은 전면에 나서게 되었고 경항공모함 치토세, 치요다, 즈이호가 미 해군과 교전을 벌이는 사이 주력함대는 요격망을 넘어 미 해군 항공모함을 공격하는 작전을 세웠다.





은밀하게 작전을 세운 일본은 본토를 지켜낼 자신이 있었으나 미국은 발전된 레이더 기술과 암호 해독력으로 일본 작전을 간파하고 있었다. 일본 함재기가 하늘로 날아오르는 것을 레이더로 발견한 미 해군 함재기는 길목에서 기다렸고 처참한 결과를 맞이한다.






일본 해군이 탑재한 함재기 70%인 250대 가량이 하루에 증발했고 미 해군 손실은 30대정도였다.


일본 해군은 잠수함이 모두 격침된 상태였고 미 해군에는 건재한 잠수함이 항공모함 전단을 엄호하고 있었다는 것을 간과하면서 다음날 전투에서 일본은 함재기 대부분을 잃는다.





쇼카쿠와 다이호, 히요가 침몰했으며 즈이카쿠와 준요는 심각한 피해를 입으면서 일본 해군은 더 이상 전력으로 평가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야마토 호텔과 무사시 료칸은 건재했지만 일본은 미국에게 "마리아나 칠면조 사냥' 이라는 별명을 듣게 된다.





미드웨이에서 전과를 거둔 엔터프라이즈, 렉싱턴, 호넷 등 주력 항공모함 7척과 경항공모함 8척은 모두 건재했다. 일본 해군은 필리핀 해전에서 입은 치명상으로 일본 본토를 방어하기 어렵다는 것을 스스로 자각하게 되었으나 결사 항전은 외쳤다.





가미카제 특공대를 비롯한 자살특공대 참여를 강요하면서 자국의 군인들을 압박했고 미국은 전쟁에서 패배했음을 인전하라고 조심스럽게 권유했지만 군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맨하탄 프로젝트를 계획하던 미국은 이놀라게이 B-29 전략폭격기에 리틀보이를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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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원초적한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