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TO2018. 5. 26. 11:33


내연기관이 등장하면서 유럽 내에는 자동차 제조사들이 난립하기 시작했습니다. 소규모 수제업체들이 성장하면서 기업 구조를 갖게 되었고 유럽 뒤늦게 통일이 된 독일은 주변국을 앞서기 위해 독일인 특유의 계획적이고 완벽을 추구하는 성향을 발휘하기 시작했습니다.


혼돈의 시기, 독일은 1차대전을 겪으면서 기술적으로 발전을 이루었고 유럽 내에서 패권국이 되기를 희망했습니다. 아돌프 히틀러라는 광기 어린 지도자가 나타나면서 독일은 다시 한번 대규모 전쟁의 중심에 섰고 꿈을 이루지 못한 채 패망으로 치달았습니다.





2차대전 얄타에 모인 이오시프 스탈린과 윈스터 처칠, 해리 트루먼은 전쟁이 끝나가는 것을 예감하고 있었습니다. 포츠담에서 전후 독일 영토 분할에 대한 논의를 거치면서 독일 일부는 소련 치하에 영입되었고 나머지는 미국의 영향 하에 편입되었습니다.


분할된 독일은 '서독' 과 '동독' 으로 나뉘어 냉전의 대표로 인식되었습니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로 나뉜 경제체제에서 서독이 '라인강의 기적' 이라는 평가를 듣게 될 정도로 발전하면서 동독의 입지가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서독과 동독의 경제 격차가 심화되면서 공산주의 체제에 대한 회의가 부각되었고 종주국으로 불리던 소련이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팽팽하던 대립각은 서독으로 기울기 시작했고 동독 마르크는 시장에서 가치를 상실하면서 서방 통화로 교환되는 현상이 늘어났습니다.





2차대전을 바탕으로 성장한 폭스바겐과 메르세데스 벤츠, BMW는 전범기업이라는 오명을 가지게 되었지만, 전쟁으로 획득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세계 시장으로 향했습니다. 엎치락 뒤차락을 반복하며 생존을 위해 노력하던 독일 자동차 기업은 서서히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습니다.


폭스바겐은 '퀴벨바겐(Kubelwagen)' 과 '슈빔바겐(Schwimmwagen)' 같은 군용차로 유명세를 얻었으며 북미 시장에서 '비틀' 이 대박을 치면서 부흥을 알리게 됩니다. 메르세데스와 비머도 서로의 영역을 추구하며 성장세에 들어섰으며 고급 브랜드로서의 명성을 쌓기 시작했습니다.





성장세를 가졌던 독일 자동차 산업은 1980년 중반에 접어들면서 또 한차례의 위기에 직면합니다. 값싸고 내구성 좋은 일본 브랜드가 세계 시장 전면에 나타나면서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었고 점유가 눈에 띌 정도로 차이를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돌파구가 필요했던 때 독일은 우연치 않은 기회로 통일이 되고 독일 자동차 산업은 계획에 없었던 국면을 맞이하게 됩니다. 갑작스런 통일로 인해 동독은 경제 구조를 사유화하는 과정에서 부작용을 겪기도 했지만, 자동차 산업은 부활의 기회를 갖게 됩니다.





하늘 높은 줄 몰랐던 일본 제조사가 불황을 겪으면서 하락세에 접어든 점도 있었지만 독일 통일로 구조 조정을 겪으며 동독 경제성장률이 1년만에 5.9%에 이르렀습니다. 독일 경제 연구소들이 예측했던 독일 통일 이후 경제성장률 7% 못 미치는 수치였지만 독일 산업이 회생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독일 통일 당시 서독과 동독의 1인당 GDP 격차는 동독 6,800불의 명목 GDP 대비 1.5배 서독이 높았습니다. 1.5배 낮은 비용으로 자동차를 생산할 수 있었으며 물류 비용이 대단히 늘어나지도 않았기에 독일 자동차는 경쟁할 기회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냉전체제가 무너지면서 인접한 폴란드와 체코, 헝가리, 러시아까지 점유를 확대할 수 있는 기회도 주어졌습니다. 독일 제조사가 점유를 늘리기 위해 범용화된 모델을 추가하는 노력을 기울이기는 했지만, 독일 통일이라는 기점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독일 자동차 제조사가 1990년대 이후로 가파른 성장세를 이루면서 프리미엄과 보급형 시장에서 점유를 차지했던 유수의 브랜드보다 앞선 위치를 갖게 되었습니다. 북미와 중국, 유럽 시장까지 점유를 확대하며 독일 자동차는 최고의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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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원초적한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