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터리2018. 2. 11. 07:00


이스라엘이 독립을 선언하면서 치러진 중동전쟁은 3차전인 '6일 전쟁' 까지만 하더라도 이스라엘의 완벽한 압승이었습니다. 프랑스제 미라지 전투기와 뛰어난 이스라엘 공군 조종사들의 조합은 최강이었고 기갑 전력은 2차대전 독일 전력을 능가했습니다.





독일이 사용했던 전격전을 그대로 적용하면서 이집트, 시리아, 요르단군을 대파했고 무기를 지원하는 미국과 소련의 대리전 양상으로 치달았습니다. 베트남전에 참전한 미국은 직접적인 지원을 할 수는 없었지만, 무기와 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3차 중동전까지 승리한 이스라엘은 도취했었고 이집트는 복수의 칼날을 날카롭게 다듬었습니다. 빼앗긴 시나이반도에는 이집트 재정 10%를 차지하고 있는 수에즈운하가 있었기 때문에 절대적이었으며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서도 필요했습니다.





이스라엘 라마단으로 불리는 "욤 키푸르 속죄일" 은 이스라엘에서 가장 중요한 국가 행사 중의 하나였고 대부분 군인들은 단식을 실행하고 있었습니다. 중요한 전선을 제외하고는 집으로 휴가를 떠났기 때문에 이스라엘 전체가 비어있는 것과 같았습니다.





욤 키푸르 속죄일을 기점으로 아랍 연맹은 공세를 시작하기로 결정했고 잃어버린 시나이반도와 골란고원을 되찾을 것이라 다짐했습니다. 1973년 10월 6일 아랍 연합은 이스라엘을 전격적으로 침공했고 시나이반도와 골란고원으로 향했습니다.





기갑 전력을 새롭게 구성한 이집트군은 이전의 허술한 군대가 아니었지만, 이스라엘은 방심했고 이집트의 새로운 대통령 '안와르 사다트' 능력을 무시했습니다. 방어를 위한 160km에 달하는 모래방벽 '바레브 라인' 은 철옹성으로 불렸지만, 이집트 초급 장교의 재기발랄한 아이디어에 무너졌습니다.





포탄보다는 바닷물을 끌어들여 씻어내리자는 발상이 통했고 바레브 라인은 무너집니다. 고도의 숙련이 필요한 소련제 대전차 미사일 AT-3를 이집트군은 능숙하게 사용하여 원거리 전차 공격을 했고 근거리까지 접근한 전차는 RPG-7이 맡았습니다.





속수무책으로 당한 이스라엘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고 주력 전차인 M48 패튼에서 들려오는 이스라엘 기갑병 절규는 아비규환이었습니다. M48 전차는 포탑이 유압으로 움직였고 상부 포탑이 피탄되면서 불이 붙어 이스라엘 기갑병이 화상으로 처참하게 전사했습니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상황을 경험한 이스라엘은 강력한 공군력으로 전선을 뒤집으려고 출격했습니다. 이스라엘 공군은 미국에서 지원받은 'A-4 스카이호크' 공격기와 'F-4 팬텀' 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최신예로 구분된 공격기와 전투기는 세계 최강으로 불렸습니다.


최고의 능력을 갖춘 이스라엘 조종사에게 최신예 전투기가 주어졌으니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할 것이라고 예상했으나...





전선에 나선 A-4 스카이호크는 레이더 추적이 가능한 '2K12 KUB(나토명 SA-6)' 지대공 미사일에 피격되었고 레이더 경보장치를 장착한 F-4 팬텀도 격추되기 시작합니다. 미사일 공격을 피한 전투기도 대공포 'ZSU-23-4 쉴카' 의 근거리 공격에 무너졌습니다.





스트레이트 플러시(Straight Flush) 레이더를 사용하는 SA-6 레이더에 F-4가 반응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된 이스라엘 공군은 커다란 충격에 빠집니다. 이스라엘보다 더 큰 충격을 받은 것은 대리전에서 패배한 미국이었고 모의전에서 미 공군이 전멸이 예측됩니다.





최강으로 불리던 멀티롤 전투기 F-4 팬텀에 대한 효용 가치가 도마에 오르면서 미국은 레이더 포착이 안 되는 스텔스로 방향을 전환합니다.스텔스 전투기 개발은 록히드 마틴 스컹크웍스에게 돌아갔고 최초의 스텔스 전투기 F-117A 나이트호크는 1989년 파나마 침공작전에서 첫 데뷔를 합니다.


F-22 랩터와 F-35 라이트닝2로 이어지는 스텔스 전투기 개발사에는 이스라엘 욤 키푸르 전쟁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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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원초적한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