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터리2018. 1. 10. 07:00


1947년 이스라엘은 영국 외무장관 아서 밸푸어가 로스차일드에게 보낸 '밸푸어 선언(Balfour Declaration)' 을 기초로 독립을 공표했습니다. 이스라엘 주변국들은 '맥마흔 선언'을 근거로 부정했고 당사자인 팔레스타인은 전쟁이 눈앞에 닥쳤음을 예감하게 됩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전쟁은 시간이 지나면서 강대국의 개입이 본격적으로 진행되었고 냉전 양국인 미국과 소련의 힘겨루기로 흐르게 됩니다. 미국은 물밑으로 이스라엘을 지원하고 소련은 아랍 내 기반을 다지기 위해 시리아와 이집트에 무기를 지원합니다.


영국이 식민지를 가지고 있었고 3국들이 독립하면서 미국은 전면에 나서는 것에 주의했습니다. 미국이 세계에 내보인 스스로 정체성은 "제국주의 타파" 였고 나름대로 모범을 보이기 위해 노력하면서 이스라엘을 전면적으로 지원하지 못했습니다.





우수한 무기와 전력으로 이스라엘에 압도적인 아랍 주변국들은 오랜 시간 준비한 이스라엘의 반격에 1차 중동전쟁과 2차 중동전쟁을 내주면서 굴욕을 겪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승리하는 데는 체코슬로바키아의 도움이 절대적이었지만 이면에는 소련이 있었습니다.





소련은 표면적으로 아랍국가에 무기와 병력을 적극적으로 지원했지만 뒤로는 체코를 우회하여 이스라엘에 무기를 지원하는 이중적인 입장을 취했습니다. 3차 중동전쟁으로 명명된 "6일전쟁"은 미국과 소련이 적극적으로 개입한 가운데 이집트와 이스라엘이 전면에 나선 전쟁입니다.





아랍 주변국 중에서 가장 발전된 무기와 병력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정권을 장악한 '가말 압델 나세르(Gamal Abdel Nasser)' 이집트 대통령은 이스라엘에 압도적인 승리를 장담했습니다. 대위 출신이기는 하지만 군에 몸담았던 나세르는 범아랍주의를 내세웠습니다.





아랍에서 인지도를 높이면서 자국 지지도가 높아졌고 소련의 무기 지원으로 3차 중동전쟁에서는 팔레스타인 승리를 점쳤습니다. 예상과는 다르게 이스라엘은 1967년 6월 5일 이집트를 선제공격하였고 공군력 80%를 상실한 이집트는 대응조차 하지 못한 채 전쟁은 끝을 맺습니다.





6일 만에 이스라엘 승리로 끝난 전쟁은 불가능한 전력으로 기적을 만들어 낸 역사로 기록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은 6일전쟁 이후로 현재와 같은 영토로 확장할 수 있었고 예방전쟁으로 정치적 압박을 가하려고 했던 나세르는 굴욕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뛰어난 전력을 가진 이집트가 이스라엘에게 6일만에 굴복하게 된 것은 시리아로 이스라엘 병력이 집중하고 있다는 보고를 받고 대부분 전력을 시리아 국경지대로 옮기면서 이스라엘 공군 폭격에 대비할 수 있는 병력이 전무했다는 평가가 제기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병력이 시리아 국경지대로 옮겨진다는 정보를 전달할 것은 지원을 아끼지 않던 소련으로 밝혀졌고 이집트 대부분 병력이 이스라엘 진격 소식에 제대로 대응하지 않고 퇴각한 것은 미국이 가진 대규모 살상 무기 때문이라는 의견도 제시되었습니다.





표면적으로 미국과 소련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주축 아랍국 대립의 뒷배로 보여지고 있지만, 이스라엘이라는 방향으로 집중되어 있었던 것이 기적적인 승리의 이유인 것입니다. 시오니즘을 주장하며 골란고원과 네게브 사막까지 영토를 확장하려는 이스라엘 꿈이 6일전쟁으로 현실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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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원초적한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