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터리2017. 12. 6. 07:00


동축로터를 사용하거나 하인리히 포케(Henrich Focke)가 개발한 FW-61과 같은 초기형 헬리콥터는 현대 헬리콥터와는 상당한 차이를 가지고 있었다. 우크라이나 키프 출신의 "이고르 이바노비치 시코르스키(Igor Ivanovich Sikorsky)" 는 헬리콥터 개발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2차대전 소련과 인접한 우크라이나는 혼란스러웠고 헬리콥터와 항공기 개발에 미래가 없다고 판단한 시코르스키는 미국으로 이주를 결심한다. 1923년 "시코르스키 항공" 을 설립하였고 헬리콥터 개발에 박차를 가하게 되고 메인로터와 테일로터의 형식을 갖게 된다.





'VS-300' 으로 명명된 시코르스키 항공의 헬리콥터를 본 미 육군 항공대 지휘부는 깊은 감명을 받게 된다. 대부분의 헬리콥터 방식이 동축에 로터를 두 개 설계하여 빈약한 추력을 보완하고 반동을 제어하는 방식이었지만 시코르스키는 생각을 달리했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혁신적인 헬리콥터를 개발한 시코르스키는 VS-300의 엔진을 150마력까지 개량하는 데 성공하였고 포케볼프 FW-61의 성능을 훌쩍 앞서게 된다. 시제기였던 VS-300보다 향상된 제식 헬리콥터의 개발을 육군 항공대가 의뢰하게 된다.





시제기 'XR-4' 라는 제식 명칭을 부여받은 시코르스키의 헬리콥터는 당시로서는 최고 능력을 보여주었다. 1,200km의 편도 비행에 이어 고도 3.7km에 이르렀으며 당시 최고 비행속도였던 100km/h의 수준을 훌쩍 뛰어넘는 140km/h의 비행속도를 기록했다.





100시간동안 무사고 기록을 달성하면서 미 육군 항공대의 제식 헬리콥터로서의 자격을 완벽하게 갖추었고 29대의 생산 계약을 맺는다. 180마력의 엔진으로 추력을 발생시키던 초기형에는 'YR-4A' 라는 제식 명칭이 사용되었고 개량형인 B형으로 발전했다.





메인로터의 직경을 키우면서 연료 탑재량까지 향상시킨 본격적인 양산 모델은 200마력 엔진을 장착하였고 "시코르스키 R-4"로 명명된다.





최초로 대량생산된 헬리콥터이며 제식 헬리콥터인 R-4의 성공적인 데뷔로 본격적인 군용 헬리콥터의 시대가 열리게 된다. 가장 앞선 방산기업이 된 시코르스키는 오랜 시간 미 육군 항공대의 차세대 헬리콥터사업을 수주하고 명맥을 이어나간다.





R-4의 데뷔로 육군 뿐 아니라 해군과 해병대, 영국 공군과 해군에서도 관심의 대상으로 떠오르게 되었고 해군에서 규모를 줄인 상륙함 개발까지 고려하게 된다. 건조부터 엄청난 비용이 소요되는 항공모함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에 효율적인 지상지원이 가능해진 것이다.





R-4는 주요지역에 배치되어 짧은 거리 이동이나 부상자의 이송에 운용되었으며 관측 임무나 정찰 임무에 응용되기도 했다. 함재기로서 상당히 만족스러운 수준이었지만 고정익 항공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느린 속도로 피격될 수 있는 위험이 높았다.





영국으로 팔려나간 R-4는 '호버플라이(Hoverfly)' 로 불리웠고 조종사 이외에는 한 명의 인원만 탑승이 가능했기 때문에 대규모 수송에는 운용되기 어려운 점이 있었다.시코르스키 R-4 헬리콥터의 개발로 인해 제식 헬리콥터의 시대가 열리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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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원초적한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