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터리2017. 11. 28. 07:00


2차대전 노르망디에 상륙한 연합군은 독일로 전진하기 위해 라인강을 건너야 했지만 독일군은 교량을 폭파하면서 퇴각하는 전술을 펼쳤기에 새로운 방편이 필요했습니다. 대규모 병력과 전차가 강을 건너기에 교량이 우선적인 방법이었습니다.





공수부대를 투입해서 교량을 확보하겠다는 '마켓가든작전' 은 대규모 공수부대의 희생만 남기면서 실패한 역사를 남기게 됩니다. 교량을 파괴하면서 얻을 수 있는 시간과 비용에 엄청나다는 것을 대부분의 군대는 알고 있으며 현대전에서도 통용되고 있습니다.





전장에서 직접적인 교전을 치르는 전투부대 못지 않게 지원부대인 '공병대' 가 중요하게 대우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공병대의 꽃' 이라고 할 수 있는 장간조립교는 영국 육군 소속 도널드 베일리의 이름을 이어받아 '베일리 브릿지(Bailey Bridge)' 로 불리우기도 합니다.





철제로 된 횡축과 장축을 기본으로 90분 안에 제작되는 장간교립교는 "육군 4대 꿀보직" 이라는 비유적인 표현으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횡축 하나에 260kg이 넘기 때문에 8명이 동시에 운반해야 하며 자칫 밸런스가 무너지면 사고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장간조립교에 비해 설치가 수월한 MGB(Midium Girder Bridge, 간편조립교) 로 교체되는 흐름이며 기갑부대 소속의 AVLB(Armoured Vehicle Launched Bridge, 교량전차) 가 운용되기도 합니다.





유속이 빠르지 않거나 적진 깊숙한 지역에서 도하가 필요할 때 사용하는 RBS(Ribbon Bridge System, 리본 부교) 는 상당히 유용한 공병 도하장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 척의 작은 배를 띄워 병력과 차량, 전차가 도하할 수 있는 리본 부교는 상대적으로 설치가 쉽습니다.





대규모 철제 장비를 운반할 필요가 없으며 유속이 빠르지만 않다면 도하에도 성공적인 결과를 가져 올 수 있는 리본 부교를 고안한 것은 조선시대 한 학자에 의해서입니다.


성군으로 불리우는 '정조대왕' 이 등용한 문신이자 실학자이며 저술가인 "다산 정약용" 입니다.





영조의 손자이자 죽임을 당한 '사도세자' 의 아들인 정조가 왕의 자리에 오르면서 스스로가 사도세자의 아들임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대신들과 헤게모니를 가지기 위한 보이지 않는 줄다리기를 하던 정조에게 권위를 나타낼 수 있는 요소들이 필요했고 이를 마련해 준 것이 정약용입니다.





정약용은 수원에 성을 짓는 것에 앞장섰으며 수원으로 향하는 한강에서 정조의 권위를 떨어뜨리지 않으면서 강을 도하할 수 있는 방법을 고안했습니다. 현대 리본 부교와 같은 방식의 '배다리' 를 한강에 설치하여 정조의 능행차가 그대로 통과할 수 있었습니다.





59km에 달하는 거리에 5,000여 명의 인원이 동원된 능행차는 조선시대 최고의 이벤트였으며 정조의 권위를 백성과 신하들에게 알리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우게 됩니다. 효심 깊은 왕으로 회자되면서 지금까지도 조선시대 성군으로 기억되고 있는 이유입니다.





"다산 정약용" 의 역할로 정조가 임금으로서의 권위를 세우면서 신하들과의 패권에서 앞설 수 있었으며 아버지 사도세자를 기리는 수원성을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정약용이 자신이 우러르고 있는 효심 깊은 왕의 권위를 세우기 위해 한강에 설치한 배다리는 오늘날 공병대의 중요한 개념 중에 하나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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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원초적한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