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터리2017. 10. 5. 07:00


폴란드침공을 시작으로 2차대전 중심에 선 히틀러는 독일 육군의 유능한 장성들의 힘을 빌어 파죽지세로 유럽을 장악했고 가장 두려워 하던 프랑스와 영국을 마주하고 있었습니다. 야심에 찬 육군 원수 에리히 만슈타인이 입안한 낫질작전으로 프랑스를 침공하는 결정을 내렸고 실행에 나섰습니다.





아르덴 숲길을 우회하는 낫질작전은 성공적이었고 프랑스 파리를 점령하면서 독일군의 기세는 하늘을 찔렀습니다. 서부전선을 장악한 히틀러는 금기시 되었던 동부전선에 눈길을 돌리게 되었고 육군 장성들은 성공률인 낮다는 이유를 들어 반대에 나섰습니다.


성공률이 낮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히틀러는 동부전선 소련침공에 나서게 되었고 구렁텅이에 빠지게 됩니다. 프랑스를 점령하면서 유럽을 장악한 히틀러가 불가침 조약을 맺은 소련침공으로 패망을 앞당기게 되었고 독일은 2차대전 패전국으로 기록됩니다.







원대한 꿈


히틀러는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육군력을 가진 프랑스를 제압하고 해군력의 영국까지 제압할 수 있다면 발칸반도의 석유 매장지를 장악하고 소련을 침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소련을 전격전으로 침공한 뒤 동아시아까지 진출하여 일본과 협력한다는 원대한 구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강력한 경제력을 가진 미국의 아메리카 대륙을 뺀 유럽과 아시아를 장악한 뒤 세계를 제패하겠다는 커다란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소련침공이 우선적으로 해결되어야 했습니다. 2차대전 시작부터 육군 장성들에게는 말하지 않았지만 소련침공은 예견된 일이었습니다.








소련 내부사정


소련은 볼셰비키 혁명을 이후로 공산주의가 출연하면서 적백전쟁을 겪었고 공산주의자들의 승리로 마감을 합니다. 레닌이 사망한 뒤 권력을 승계 받은 이오시프 스탈린은 자신의 권력에 반감을 가진 군부의 세력을 축출하는 데 많은 공을 들이게 됩니다.


소련의 유능한 장성들을 모두 숙청시키거나 시베리아 유배지인 굴락으로 보내버린 스탈린은 독재를 시작했고 내부 결속력은 극도로 낮아졌습니다. 지휘관들이 사라진 소련은 강력한 군사력을 잃어버렸고 이를 알게 된 히틀러는 소련침공에 확신을 갖게 됩니다.







덩케르크 철수


프랑스 침공과 함께 오합지졸이 된 영국군은 전격전으로 밀고 들어오는 하인츠 구데리안의 기갑사단을 막아낼 길이 없었고 덩케르크까지 퇴각을 하게 됩니다. 막다른 골목에 몰린 영국군은 덩케르크에서 빠져나갈 것만을 구상하면서 전의를 상실했습니다.


영국이 보유한 대부분의 무기를 버리고 도버해엽을 건너간 영국군을 본 히틀러는 영국이 다시 참전하지 않을 것이라고 속단했고 마지막 일격을 가하지 않았습니다. 대부분의 전력을 잃어버리기는 했지만 영국군 대부분이 덩케르크에서 탈출한 것은 이후 악몽으로 바뀌게 됩니다.







겨울전쟁


독일과 불가침조약을 맺은 스탈린은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그동안 노렸던 핀란드를 침공하게 됩니다. 혹독한 겨울에 전쟁을 치른 경험이 많은 소련의 붉은군대는 소총 조차 보유하지 않은 핀란드를 쉽게 장악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소련 군대는 여전히 강력했지만 지휘관 부재로 상대적으로 전력이 약한 핀란드를 상대로 제대로 힘을 써보지도 못했고 패전을 연속하며 침공에 실패를 하게 됩니다. 걸출한 저격수 "시모 해위해" 의 활약이 눈부셨지만 붉은군대가 막강하지 않다는 것을 히틀러가 알게 됩니다.







미국 참전


1차대전에 참전하여 많은 피해를 입은 미국은 유럽전쟁에 대한 국내 여론이 극도로 나빠졌기 때문에 연합군과 독일군 사이에서 군수품을 팔면서 이익을 도모하고 있었습니다. 히틀러는 미국이 참전하지 않도록 자극을 극도로 피했으며 대서양 U보트작전에서도 미국을 의식했습니다.


미국 상선을 건드리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히틀러는 소련침공에서 유리한 고지에 이르자 미국 참전에 대해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 태도로 돌변합니다. 많은 승리로 되취된 히틀러가 도를 넘었다고 판단했는지 미국은 참전을 결정하고 독일은 두 전선에서 위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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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원초적한량